철학대안학교를 표방하고 있는 광주 지혜학교 교정에서 학생들이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지혜학교 제공
교육당국의 인가를 받지 않고 ‘사실상의 학교’를 운영할 경우 처벌하도록 돼 있는 초중등교육법 조항에 대해 미인가 대안학교 관계자들이 헌법소원과 함께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헌법에 보장된 교육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대안학교와 관련해선 일부 입시학원들이 ‘미인가 대안교육기관’의 이름을 걸고 고액의 수업료를 받거나, 운영비를 유용하는 등 부작용도 있다. 하지만 다양한 교육 철학이나 운영 방식을 가진 대안학교를 일률적으로 규제하고 불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온다.
‘철학 대안학교’를 표방한 광주 지혜학교의 장종택 교장은 교육부의 인가를 받지 않았는데도 ‘학교’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중·고교 과정에 해당되는 학생들을 모집해 사실상의 학교를 운영한 혐의로 지난 17일 광주지법에서 첫 재판을 받았다. 광주 광산구 등임동에 있는 이 학교에는 현재 120여명이 재학 중이다.
장 교장이 재판에 회부된 것은 지난 1월 광주시교육청이 지혜학교의 실정법 위반과 관련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것이 발단이었다. 광주 광산경찰서는 장 교장을 불러 조사한 뒤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광주지검은 ‘학교설립 인가를 받지 않고 사실상 학교로 운영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 초·중등교육법 67조 2항에 근거해 지난 6월 장 교장을 벌금 3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하지만 대안교육연대와 참교육전국학부모회 등 7개 단체는 지난 7월 “지혜학교 건이 미인가 대안학교에 대한 최초의 사법적 판단이어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그러자 재판부 직권으로 이 사건을 정식 재판에 회부했다. 장 교장은 재판이 시작되기 전 재판부에 “헌법재판소에 초중등교육법 67조와 65조에 대한 위헌 여부 판단을 받아달라”며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광주시 광산구 등임동에 있는 광주 지혜학교에선 지난 해 수능성적 만점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지혜학교 제공
학부모와 교사, 교육단체 관계자들로 구성된 지혜학교 대책위원회는 “국가와 사회가 청소년의 학습권(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의무가 있는데도, 초중등교육법으로 미인가 대안학교 책임자를 처벌하려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학습권은 헌법에 명시돼 있지는 않지만,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헌법 31조 1항의 교육권과 맥락이 닿아있다는 게 이들 주장이다.
앞서 서울의 대안학교인 서울 ‘숲나-플레 10년학교’ 설립자 문상이 전 교장도 지난해 3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문 전 교장도 지혜학교의 장 교장과 같은 혐의로 검찰로부터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뒤였다.
대안교육 관계자들은 미인가 대안학교장에 대한 형사 처벌은 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해 생긴 문제라고 말한다. 2015년 한 해의 학업중단 학생이 4만7070명이나 되는 등 공교육이 모든 청소년을 끌어안지 못해 대안교육기관이 필요한데도 관련 법률은 여전히 과거의 잣대로 현실을 재단한다는 것이다.
실제 국내 미인가 대안학교 700여곳 가운데 정부 인가를 받은 대안학교는 82곳(11%)에 불과하다. 기존 학교와 동일한 교육 과정을 50% 이상 이수하도록 한 규정이 대안교육의 목적과 자율성을 제약한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미인가 대안학교들이 인가 신청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장동식 광주 지혜학교 교감은 “초중등교육법이 만들어진 후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났고, 사회와 교육 상황이 모두 바뀌었다. 실험적 대안학교,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학교 등 교육 영역의 다양성과 특수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