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고흥군의회는 29일 군민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추경예산 파행 사태에 사과했다. 고흥군의회 제공
전남 고흥군의회가 추경예산을 무리하게 깎았다가 후폭풍이 거세지자 군민한테 사과했다.
고흥군의회는 29일 군민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예산심의 과정에서 군민의 생활과 밀접한 예산을 삭감한 데 대해 유감스럽고 송구스럽다”고 밝혔다. 군의회는 “의회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지만, 군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렸다. 앞으로 군민께 부여받은 사명을 절대 잊지 않고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거듭나겠다”고 덧붙였다. 지방의회가 예산심의와 관련해 사과문을 낸 것은 이례적이다.
앞서 군의회는 지난 2일 2차 추경예산을 심의하면서 상정액 404억원 중 55%인 222억원을 삭감하고 182억원만 승인했다. 도비와 분담하거나 필수적인 경비여서 삭감이 불가능한 예산을 뺀 자체 사업비 240억원 중 93%를 삭감한 것이다. 군의회는 “의원들의 의견을 사전에 묻지 않고, 의회에 미리 설명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댔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병종 전 군수가 이끌었던 민선 6기 추경예산을 11차례 심의했을 때 상정액의 삭감률은 평균 3%였다. 지난 2월 박 전 군수가 상정한 1차 추경예산 때는 1009억원 중 0.07%인 7200만원만 깎아 사실상 원안 의결했다.
삭감한 사업의 내용을 두고도 비판이 거셌다. 군의회는 태풍 ‘솔릭’으로 피해를 본 내나로도와 외나로도의 복구 비용까지 깎는 바람에 원성을 샀다. 또 관내 경로당 공기청정기 보급비와 마을 단위 상수원·수로·도로 개설 등 주민의 생활과 밀접한 사업도 예외 없이 삭감했다.
이 때문에 군의회가 민주평화당 출신 송귀근 군수를 길들이려고 예산 심사권을 활용해 발목을 잡았다는 뒷말이 나왔다. 현재 군의회는 전체 12명 중 9명이 더불어민주당, 2명이 민주평화당, 1명이 무소속으로 민주당이 석권하고 있다. 민생예산이 무더기 삭감되자 일부 주민들은 군의회를 찾아가 항의하거나 민주당을 격하게 성토하는 등 후폭풍이 만만치 않았다. 주민들은 “예산을 정쟁의 도구로 삼는 바람에 태풍 피해 복구와 마을 숙원 사업이 미뤄졌다. 이미 추경 편성은 어려워졌고 내년 본예산에 반영해도 착수 시기는 서너 달씩 미뤄지게 됐다”고 한숨지었다.
안관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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