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정부세종청사 새 청사 국제설계공모전 심사위원장직을 사퇴한 김인철 아르키움 대표. 아르키움 제공
2021년에 들어설 정부세종청사 새 청사 설계가 지난 달 31일 결정됐다. ‘ㄷ’자 모양으로 길게 늘어선 정부세종청사의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있는 14층 빌딩이 그려진 설계도가 공개되자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게다가 이 설계 국제공모전 심사를 맡은 심사위원장과 위원 1명이 “짜고 친 심사”라고 반발하며 자진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심사위원장직을 사퇴하고 나온 김인철 전 위원장은 1일과 5일 <한겨레>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배신감까지 느낄 만큼 안타깝고 슬펐다”고 했다. 김 전 위원장은 설계 공모 과정에 ‘작전’이 개입됐을 것이란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증거는 없지만 공모와 심사 과정을 보며 그런 추측을 하게 됐다”며 ‘작전’의 주체로 행정안전부를 지목했다. 김 전 위원장 말을 종합하면, 7명의 전문가 및 공무원 등으로 구성된 국제설계공모 심사위원회는 1차로 5개의 설계안 가운데 2개의 안을 뽑았다. 김 전 위원장이 개인적으로 뽑았던 ‘저층형’이 1등, 최종선정된 ‘타워형’이 2등을 차지해 2차 투표를 실시하게 됐다. 그런데 여기서 판이 뒤집혀 ‘타워형’이 최종 선정된 것이다. 그는 “2차 투표에서 행안부가 의도했던 대로 표가 몰렸고, 결과가 뒤집혔다. 내가 처음부터 막았지만 그렇게까지 ‘작전’을 할 거라 생각 못했다. 심사위원장은 허수아비였다”고 탄식했다.
그는 1등작으로 뽑힌 ‘타워형’ 설계에 대해서도 문제를 지적했다. 김 전 위원장은 “만약 ‘작전’이 있었더라도 좋은 안이 뽑혔으면, 그게 회사의 역량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다. 그런데 말이 안되는 안이 뽑혀 내가 중간에 퇴장하고 사퇴까지 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세계적 조경전문가 다이애나 발모리가 애초 제시한 ‘마스터플랜’은 기존의 정부세종청사가 ‘ㄷ’자 모양으로 3만7000여㎡의 빈 공간을 감싸안는 형태다. 그런데 이번에 최종 선정된 ‘타워형’ 설계안은 그 빈 공간을 14층의 고층 빌딩으로 채워버렸다.
김 전 위원장은 “애초 마스터플랜의 목표가 세종청사 가운데를 비우는 것이라 건물을 세우더라도 기법상 공간을 비워보이게 할 수 있다”며 “그래서 내가 가운데 고층 건물을 세우는 ‘타워형’을 반대했던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독특한 형태의 기존 정부세종청사 건축물이 있다. 새 청사가 거기에 ‘화룡점정’을 해야 하는데 점을 엉터리로 찍는 바람에 세종청사의 의미를 완전히 퇴색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김 전 위원장 자신이 지지했던 ‘저층형’ 설계안에 대해선 “완전히 비울 수는 없다면, 최선은 아니지만 마지막 수단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건물을 낮게 짓고 조형적으로 부피감을 가볍게 만들면 청사에서 호수까지 이어지는 풍경의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김 전 위원장은 청와대, 국회 분원 등의 세종시 이전 논의도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그 가능성도 설계 과정에서 염두에 두었어야 한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국회나 청와대가 이곳으로 오게되면 나중에 행정안전부는 청사 바깥으로 나가야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새로 짓고 이전을 해야하는 등 관리가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은 공무원들이 설계 심사에 참여하는 것도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심사위원회에 ‘아마추어’인 공무원들이 들어오면 전문가들과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질 수 없다. 게다가 발주자 쪽을 대변하는 공무원의 지향점도 불분명하고 당장의 편의성만 바라보게 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당장의 필요보다는 다음 세대에 대한 메시지가 담겨야하는데 당장의 편의성에만 치중하다 보니 어디에다 지어도 되는 건물이 나오게 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 전 위원장은 “의사 결정을 하는 발주자 쪽 사람들이 큰 그림을 생각하지않고 미시적으로 청사를 당장 편하고, 익숙한 방법으로 만들기 위해 결정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건물을 만드는 우리도 잠시 쓰는 것일뿐 건물보다 오래 살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발주 제도와 설계심사 제도를 바꾸자고 계속 건축계에 이야기했는데 아무도 듣지 않았다. 건축계의 낡은 관행을 바꾸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채윤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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