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선 전 부남호전업농협의회 회장(왼쪽 둘째)이 11일 충남 서산시 부석면 부남호 간척지에서 염해 피해를 본 벼를 보여주며 부남호 수질 오염의 심각성을 말하고 있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속살 깊이 쪽빛 하늘을 받아들인 황도 앞바다가 소슬한 서풍에 푸른 몸을 뒤척였다. 물과 하늘은 푸르기가 매한가지여서 외지인 눈엔 그 경계를 가늠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워쩌유, 이쁘쥬?” 어촌계 앞마당에서 막 수확한 모시조개를 분류하던 주민이 말했다. “옛날부터 먹을 게 많었슈. 태안에서는 황도로 시집 못 와 우는 처자들이 많았다니께.”
황도는 충남 서해안과 안면도 사이 천수만에 있다. 대대로 어업이 주 수입원이었다. 만선 귀항을 바라는 ‘황도 붕기풍어제’가 충청남도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있을 정도다. 하지만 황도가 지금의 풍요를 되찾은 건 얼마 전 일이다. 1982년 섬과 안면도를 잇는 둑다리(연도교)가 만들어진 뒤 모래가 쌓이고 해수 흐름이 바뀌면서 그 많던 조개와 물고기가 섬 연안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소득이 급감한 주민들은 둑다리를 터 달라는 청원을 거듭했다. 2011년 연도교는 결국 바닷물이 무시로 드나드는 그냥 다리(연륙교)로 대체됐다. 물 흐름이 트이자 갯벌이 살아났고, 모시조개와 농어, 감성돔이 돌아왔다. 역사적인 서해안 ‘역간척’의 시작이었다. 과거에 바다를 막아 농경지를 만드는 간척사업은 한반도 지도를 바꾸는 대공사였다. 하지만 요즘 충남 서해안에선 간척지를 갯벌과 바다로 되돌리는 역간척이 화두다. 충남도가 가장 적극적이다. 도는 2011년 황도를 시작으로 갯벌 복원에 착수했다. 2014~2015년 방조제 380곳 가운데 279곳, 폐염전 54곳, 방파제 47곳의 연안·하구에서 생태조사를 했다. 지난 7월 취임한 양승조 지사가 서산 비(B)지구 방조제로 막힌 부남호의 역간척을 1호 사업으로 발표했다. 부남호가 역간척된다면 충남도는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다. 충남도는 부남호의 역간척 사업을 위해 곧 어민, 농민, 입주업체, 전문가로 이뤄진 ‘천수만 살리기 협의체’를 꾸릴 계획이다.
천수만 일대에선 30~40년 전, ‘간척 지주’의 꿈에 부풀었던 주민들이 ‘역간척 전도사’로 돌아서고 있다. 이종선(72) 전 부남호전업농협의회 회장도 그런 경우다. 그는 “예전엔 바다가 안마당이었다. 조개는 너무 흔했고 돔, 농어, 우럭 새우 같은 고급 수산물도 참 많이 잡혔는데, 그때는 바다와 갯벌 귀한 줄을 몰랐다”고 돌이켰다.
그러나 부남호 간척지의 현실은 참담하다. 부석면 갈마리 현대모비스 연구소와 검은여 사이 논들은 털 빠진 동물처럼 검은 갈색의 벼가 쭉정이도 맺지 못한 채 방치돼 있었다. 군데군데 드러난 논바닥엔 암갈색 논물이 죽은 피처럼 고여 있었다. “저 썩은 소금물로 농사를 지을 수 있겄슈? 땅과 벼가 다 타버렸슈.” 부남호 쪽은 수원이 부족해 방조제를 통해 바닷물이 스며든다고 했다. 민물이 짠물이 되고, 이 짠물에 축산 오·폐수와 농약, 철새 배설물까지 흘러들어 농업용수로도 쓸 수 없는 물이 됐다는 것이다. 지난해 1~5월 환경부가 조사한 부남호 수질(COD, 화학적 산소요구량)은 13.8~29.5㎎/ℓ로 6등급 수준이었다.
과거 부남호와 인근 간월호는 바닷물이 드나드는 갯벌이었다. 1980년 간척 사업이 시작돼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담수호가 됐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폐유조선을 동원해 그 유명한 물막이 공사를 한 것이 1982년, 작물 재배가 시작된 것이 1986년이었다. 당시만 해도 농지와 산업용지를 확보하는 연안·하구 개발사업(간척사업)은 절대선이었다. 간척 사업은 충남 안면도-홍성·보령 사이 천수만에 집중됐다. 위로는 부남호와 간월호, 황도, 중간 지점의 신리 하구, 하단의 소성리 하구, 닭벼슬섬 등에 크고 작은 수많은 방조제가 건설됐다.
보령호 방조제를 사이에 두고 바다와 담수 물빛이 확연하게 차이 난다. 바다(왼쪽)는 물빛이 파랗게 맑은데 담수(오른쪽)는 오염돼 암적색이다. 충남도 제공
그 결과, 서해 해양 생물의 보금자리가 직격탄을 맞았다. “방조제가 떡허니 들어서니께 비바람이 몰아쳐도 물 건너 다녀오는 게 수월하드만유. 그런디 광천 독배와 장배꾼들 왁자지껄한 소리, 중선의 뱃고동이 끊기니 할 일이 없어지더니 돈이 씨가 마르고 갑자기 가난해졌슈.” 보령호 인근에서 만난 김종구(71) 소성1리 이장은 이렇게 하소연했다. 호미 하나로 갯벌을 일궈 자식들 대학 공부 시키고, 갯벌에서 잡은 낙지를 팔아 논밭을 늘렸다는 이야기는 더는 들을 수 없다. 보령호는 간척 농경지에 물을 공급할 목적으로 1995년 만들어졌다. 20여년 동안 애초 계획의 3배를 웃도는 4000여억원이 투입됐다.
김 이장은 “요즘 쌀 80㎏ 한 가마니가 15만~20만원 한다. 방조제 만들기 전 갯벌에서 반나절 일하면 바지락 두 망(40㎏) 정도를 거둬 지금 돈으로 치면 15만원 정도 벌었다”고 했다. 그는 “갯벌이 살아나면 주민이 살고, 객지에서 고생하는 동네 사람들이 돌아오고 젊은이들도 고향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며 “더 늦기 전에 역간척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역간척은 황도와 보령 무창포 등 천수만 전역에서 지지를 받고 있다.
간척 전인 1984년 부남호 지역(왼쪽)과 부남호의 2018년 항공 사진. 간척 전 물길을 따라 넓게 형성돼 있던 갯벌이 농경지로 바뀌었다. 구글어스 갈무리
김종구 보령시 오천면 소성1리 이장(왼쪽 첫째)이 12일 보령호 방조제를 찾은 김윤섭 충남도 해양환경팀장(왼쪽 셋째)에게 역간척 등 담수호 수질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충남 태안군 안면읍 황도 주민들이 12일 모시조개를 출하하고 있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충남 보령 무창포 해수욕장의 닭벼슬섬 연륙돌제. 바다를 막았다가 모래가 쓸려가고 해안선이 침식됐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김충기 박사는 “이제는 기술의 발전으로 수질을 개선하거나 염분을 줄이는 등 연안·하구별로 다양한 맞춤식 역간척이 가능하다. 본격 역간척에 앞서 바닷가 휴경지를 습지로 바꿔보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충남도는 부남호를 곧 역간척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간척농지의 66%를 소유한 현대도시개발이 기업도시, 웰빙 특구 조성사업을 추진 중이고, 농지 소유자들도 역간척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전승수 충남도 정책자문위원회 해양수산분과위원장(전남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은 “그동안 간과했던 연안·하구의 가치를 평가해 선별적으로 역간척할 것이다. 역간척을 뒷받침할 하구복원법이 국회에서 조속히 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역간척
해안가의 오목한 지형 끝을 연결하는 제방을 쌓고 바닷물을 퍼낸 뒤 흙을 채워 농경지나 산업용지로 만드는 일을 간척이라고 한다. 역간척은 바다에 쌓은 제방을 열어 간척 이전 자연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다. 역간척은 하구·연안과 갯벌의 가치가 농경지보다 훨씬 크고, 간척으로 훼손된 자연환경을 복원하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점에서 최근 독일·네덜란드 등 유럽국가에서 확산되는 추세다.
송인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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