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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 송건호 선생 17주기, 생가터에 흉상 제막

등록 2018-12-21 15:55수정 2018-12-24 09:37

송건호 기념사업회·옥천군 21일 추모제
송건호 기념사업회와 충북 옥천군은 21일 청암 선생 17주기 기일을 맞아 생가터에서 흉상 제막식과 추모제를 열었다. 충북 옥천군 제공
송건호 기념사업회와 충북 옥천군은 21일 청암 선생 17주기 기일을 맞아 생가터에서 흉상 제막식과 추모제를 열었다. 충북 옥천군 제공
한국 언론자유 운동의 상징적 존재인 청암 송건호(1926∼2001) 선생 흉상이 충북 옥천군 군북면 증약리 생가터에 세워졌다.

송건호 기념사업회와 충북 옥천군은 21일 청암 선생 17주기 기일을 맞아 생가터에서 흉상 제막식과 추모제를 열었다. 이날 행사는 선생의 장남인 송준용 청암언론문화재단 상임이사와 이인석 청암송건호기념사업회 회장, 김종구 <한겨레신문> 편집인, 김재종 군수, 김외식 군의장, 주민 등 70여명이 참석해 청암 선생을 추모하고 뜻을 기렸다. 이날 제막한 흉상은 40㎝ 높이의 동 재질로, 조각가 김성용 교수(한남대 미술교육과)가 제작했으며 1.4m 화강석 기단 위에 안치됐다.

송건호 선생은 1953년 <대한통신> 기자로 언론인으로서의 첫발을 뗀 뒤 <조선일보> <한국일보> <경향신문> 등에서 일했다. 1975년 <동아일보> 편집국장으로 재직할 당시 박정희 군사 독재정권의 언론탄압에 저항하며 ‘자유언론실천선언’을 주도한 기자 150여명이 강제 해직당하자 이에 항의하며 사표를 던졌다. 그 뒤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의장(1984),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 공동대표(1987)를 역임하고, 1988년 5월 창간호를 낸 국민주 신문 <한겨레신문>의 초대 사장을 지내며 대한민국 언론계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언론인으로 정도를 걸었고, 대쪽 같은 기자 정신을 간직해 ‘한국 언론의 사표’ ‘해직 기자의 대부’ ‘민족 지성’ 등으로 불렸다. 그는 <해방전후사의 인식> <한국민족주의의 탐구> <한국현대사론> 등 저서 20여권을 남기는 등 현대사 연구에도 기여를 했다.

대쪽 같은 기자 정신으로 언론인들의 추앙을 받다가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 때 받은 고문으로 투병하다 2001년 별세했다. 그해 11월 그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청암언론문화재단이 설립됐다. 재단과 <한겨레>는 그의 뜻을 기리는 ‘송건호 언론상’을 제정했다.

2년 전 발족한 송건호기념사업회는 그의 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생가터에 기념관 등을 세울 계획이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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