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열린 대전평생교육진흥원 행복교실 졸업식에서 졸업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송인걸 기자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공부하기 딱 좋은 나이인데~”
21일 오전 11시, 대전시 중구 선화동 대전평생교육진흥원(옛 충남도청) 콘퍼런스홀에 ‘행복학교’ 비공식 교가가 울려 퍼졌다. 행복학교는 대전평생교육진흥원이 운영하는 초등학력인정 성인문해교육 프로그램이다.
이날 50대부터 80대까지 2개 반 44명이 학력인증서와 졸업장을 받았다. 지난 3월 60여명이 입학했지만, 건강 등 개인 사정으로 모두 졸업하지는 못했다. 이들은 학교에 못 다닌 사연이 비슷하고 인생 황혼기에 공부해서 그런지 정이 남다르다. 졸업식을 앞두고 언니, 동생 부르며 기념사진을 찍는 풍경은 여느 학교 졸업식과 다르지 않았다.
시인이 되고 싶은 홍순임씨가 21일 졸업장을 받은 뒤 아들 부부 등 가족과 졸업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홍순임씨 가족 제공
졸업장을 받은 홍순임(78)씨는 “집 형편이 어렵고 한학자인 아버지께서 담 밖 출입을 금해서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며 “평생 학교에 가고 싶었다. 이제 영어로 내 이름도 쓸 수 있다. 첫 졸업식을 하고 내 삶을 살 수 있게 됐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졸업앨범에 <공부하는 즐거움>이란 제목의 시를 내어 ‘학교 다니면서 모르던 것도 알고 한자 한자 배우다 보면 나도 시인이 되려나 시인이 되면 좋겠다’고 적었다. 아들 권성훈(41)씨는 “어머니 장래 희망은 시인이다. 어머니께서 마음껏 공부할 수 있게 도와드려 보은하겠다”고 다짐했다.
‘일흔여덟 은정씨’라고 이름을 밝힌 졸업생은 “한국전쟁 당시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를 모두 여의고 할머니와 살면서 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고 했다. 은정씨의 졸업식을 찾은 두 딸은 “엄마가 수학과 영어를 어려워하신다. 이것저것 알려달라고 하시는데 바쁘다고 안 봐 드린 게 마음에 걸린다. 이제 중학교 과정을 공부하실 텐데 꼭 도와 드리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한 졸업생은 “이제 까막눈은 면했다. 더 공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21일 열린 대전평생교육진흥원 행복교실 졸업식에서 반장 이나연씨의 송사를 듣던 졸업생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송인걸 기자
행복교실 1반 반장 이나연(55)씨는 송사에서 “형편이 어려웠다. ‘여자는 시집 잘 가면 되는 거 아니냐’던 부모님을 많이 원망했다. 나이도 제각각이고 삶도 다른 이들이 공부하고 싶어서 행복교실에 모였다. 낯설었는데 처음 시를 쓰고, 봄 소풍 가고, 숙제도 같이하면서 추억이 쌓였다”며 울먹였다. 그는 “가을 소풍도 가고 싶다는 분들이 많았는데 소원을 이루지 못한 게 아쉽다. 졸업생들이 모두 건강하게 중학교 과정을 마치기를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반장을 따라 한바탕 눈물바다를 이룬 졸업생들은 한경애 선생님이 무대에 서자 또다시 코끝을 빨갛게 물들이며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끝까지 버텨주신 학습자님께 감사드립니다. 건강이 좋지 않아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분들이 생각나네요. 앞으로 20년 동안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저와의 약속을 꼭 지키셔야 합니다.” 담임 선생님이 묻자 학생들이 대답했다. “예~.”
21일 열린 대전평생교육진흥원 행복교실 졸업식에서 한 졸업생이 석별의 정을 부르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송인걸 기자
행복학교 졸업식은 1년을 담은 동영상을 보고 석별의 정을 부르는 것으로 폐회했다.
“손주들이 놀러 와 숙제를 못 했다며 아침 7시에 등교하는 분들도 계셨어요. 학습자님들이 직접 쓰고 그린 시화전은 많은 분께 감동으로 남아있습니다. 인생의 경륜이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졸업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더 큰 꿈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금홍섭 대전평생교육진흥원장이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송인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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