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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장서 숨진 고려인의 어머니 “아들이 자는 것 같아…”

등록 2018-12-31 05:01수정 2018-12-31 07:11

예산 공장서 26일 숨진 노동자 어머니 입국
사고 전날인 25일 성탄절에 아들 마지막 문자
“돈 벌면 가족 모두 한국 와 같이 살자 했는데”
러시아에 여자친구·세 살배기 아들 둬
동료들 “지난 9일 아들 생일이라며 사진 보여줘”
지난 26일 충남 예산 자동차부품공장에서 숨진 러시아 동포 박아무개(29)씨의 어머니(오른쪽)가 29일 입국해 예산경찰서에서 유족 조사를 받고 있다. 송인걸 기자
지난 26일 충남 예산 자동차부품공장에서 숨진 러시아 동포 박아무개(29)씨의 어머니(오른쪽)가 29일 입국해 예산경찰서에서 유족 조사를 받고 있다. 송인걸 기자
러시아 동포 박아무개씨는 성탄절인 지난 25일 아침, 한국에서 일하는 아들에게서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엄마, 러시아에서 한국어 잘 배워둬요. 돈 벌면 가족 모두 한국에 와서 같이 살아요.” 그것이 이 세상에서 아들이 전한 마지막 말이었다. 아들 박아무개(29)씨는 이튿날 충남 예산의 ㅈ자동차 부품공장에서 운송장치와 철기둥 사이에 끼여 숨졌다. 공장에는 무언가가 끼면 기계가 스스로 멈추는 안전센서가 있었지만, 앞서 작업을 마친 노동자들이 기계설비를 정비하기 위해 센서 전원을 끈 상태에서 발생한 사고였다.

어머니 박씨는 사고 소식을 듣고 지난 28일 홀로 한국으로 건너왔다. 결혼 뒤 남편의 성씨를 따라 그는 아들과 성이 같다. 아들은 영안실에 누워 있었다. “아들이, 자는 것 같아요….” 그는 아들의 사고를 믿지 못하는 듯했다. 경찰이 건네는 아들의 휴대전화와 신분증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은 텅 비어 있었다.

그는 충남 예산경찰서에서 유가족 조사를 받았다. 어머니는 아들이 보낸 마지막 문자 메시지를 언급할 때는 목이 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그는 러시아어로 말하고 통역이 말을 옮겼다.

아들이 러시아 서부 볼가 강변 도시인 사라토프에 있는 집을 떠나 한국으로 건너간 것은 지난 2월의 일이다. 한국에서는 친척이 먼저 건너가 일을 하고 있었다. 아들은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와 세 살배기 아들은 고향 땅에 남겨뒀다. 돈을 벌어 어머니와 함께 데려올 생각이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아들의 첫 직장은 부도로 문을 닫았다. ㅈ자동차 부품공장은 아들이 한국에서 두 번째로 구한 직장이었다. 이직 뒤 아들은 어머니에게 매일 문자를 보냈다. “팀장님이 잘해주신다.” “회사에서 성실하다고 인정받았다.” “일하기 편하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수시로 소식을 전했다. 어머니는 “아들이 전하는 말에 근심을 덜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들이 한국으로 일을 하러 온 이유를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고려인이니까….” 러시아에서는 수많은 고려인이 여전히 차별과 냉대 속에서 살아간다. 이들의 선조는 일제강점기 두만강을 건너 새 삶을 꿈꿨다가 1937년 옛 소련 스탈린 정부의 야만적인 강제 이주 정책을 당했다. 그 후손이 80여년 만에 조상의 고향 땅으로 돌아와 ‘이곳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는 꿈을 꿨지만, 그 꿈을 끝내 이루지 못한 것이다. 어머니는 “빨리 아들의 유해를 안고 사라토프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회사 동료들은 “박씨는 성실한 직원이었다. 지난 9일에는 아들 생일이라며 만나는 이들에게 아들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했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회사 관계자는 “장례 절차 등은 유족의 뜻에 따르겠다. 후속 조처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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