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습지는 황룡강의 호남대 인근 지점(광산구 지죽동 210-31번지)부터 영산강 합류부까지 3㎢에 달하는 구간에 있다. 광산구 제공
“축구장 때문에 국가습지 지정을 못한다는 게 말이 되나. 축구장은 다른 곳에 지어도 된다. 그런데 국가습지도 그런가?”
광주환경운동연합 최지현 사무처장이 13일 황룡강 장록습지가 국가습지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지 못하는 상황을 개탄했다. 장록습지는 황룡강의 호남대 인근 지점(광산구 지죽동 210-31번지)부터 영산강 합류부까지 3㎢에 달하는 구간을 말한다. 국립습지센터 조사 결과 국내에서 대도시 습지로는 가장 넓은 규모로 국가습지 보호구역 지정 요건이 충분한 것으로 나왔다. 최 사무처장은 “국가습지 보호구역 지정을 눈 앞에 두고 광산구와 지역 국회의원의 반대로 보호구역 지정에 제동이 걸렸다”고 비판했다.
광주시는 2017년 환경부에 국가습지 보호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는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국립습지센터는 2018년 2~12월 정밀조사를 통해 “장록습지를 국가습지 보호구역으로 지정할 만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장록습지엔 식물(179종), 조류(72종), 포유류(10종), 육상곤충(320종), 양서류(2종), 파충류(5종), 어류(25종), 저서성무척추동물(48종), 식물플랑크톤(168종)과 멸종위기종인 수달(1급), 흰목물떼새, 새호리기, 삵(2급) 등 4종의 멸종위기종 등이 서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립습지센터 한 조사관은 “대도시를 끼고 있는데도 규모가 넓고 다양한 서식처가 분포하고 있으며 자연성이 잘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장록습지의 국가습지 보호구역 지정은 친환경생태도시로 가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장록습지는 경기도 고양·파주·김포시를 끼고 있는 한강 하구나 부산의 낙동강 하구지역보다 더 생물지리학적 특성이 큰 도심 습지다. 국립습지센터 조사관은 “정부 예산으로 사유지도 사들이고 생태관도 설립하며 감시원을 배치할 뿐 아니라 시민들이 습지를 둘러볼 수 있도록 데크를 설치할 수 있다”며 “
대전시에서도 갑천을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해달라고 하지만 인근 지역이 개발이 많이 돼 국가 지정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광주시 광산구 황룡강 장록습지에서 국립습지센터가 멸종위기 포유동물의 서식을 확인한 지점.
하지만 국립습지센터는 지난해 조사했던 3곳 중 장록습지를 국가습지 보호구역 지정건의 대상에서 보류시켰다. 국립습지센터 쪽은 “순차적으로 지정하는 데 일단 전북 임실 옥정호 습지와 충북 충주 비내섬 습지 2곳을 건의했다”며 “자치단체가 보존과 개발의 갈등 속에서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두는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록습지 보호구역 지정 추진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광산구가 황룡강변에 추진 중인 축구장·야구장 건설 사업이다. 광주시와 광산구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광산구는 황룡강 둔치 7만㎡안에 축구장 2면, 야구장 2면, 파크 골프장 9홀, 생태블록형 주차장 등을 조성하는 시민운동장 조성 사업을 추진중이다. 문제는 시민운동장 조성사업이 장록습지 보호구역 지정 추진 구역 안에 있다는 것이다. 광산구 쪽은 “2015년 이 사업을 시작하면서 익산청 등 관련 기관에서 별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광주시가 2017년 장록습지를 국가습지 보호구역 지정해달라고 환경부에 요청하면서 구와 단 한마디도 협의하지 않은 것이 문제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광주시 쪽은 “2017년엔 1차 조사만 끝나 광산구와 사전 협의할 사항이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김동철 바른미래당(광산갑) 의원 쪽은 “특별교부금 10억원이 지원될 수 있도록 노력한 것은 맞지만, 국가습지 보호구역 지정을 반대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지난 해 11월 1일 김 의원실에서 환경부, 영산강유역환경청, 광주시, 국립습지센터, 광산구 관계자들이 모였던 것은 장록습지 정밀조사 결과 등을 파악하기 위해서였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김 의원실 쪽은 “앞으로 시가 추진하는 각종 개발사업의 수요가 있는 지죽교·장록교 인근 구간은 보호구역 지정에서 빼고 추진하는 방안을 중재했다”고 말했다.
광산구는 장록습지 상류에 시민운동장을 설립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대안이 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국립습지센터 쪽은 “국가습지 보호구역 예비구간에서 일정 지역을 빼려면 광주시가 자체적으로 보호습지로 지정하면 된다”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국가습지 보호구역 추진·지정계획 수립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주민 반대 여부다. 광주시와 광산구 주민들이 하나의 목소리가 나와야 국가습지 보호구역 지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광주시 쪽은 “이달 말이나 다음달 초 공식적으로 국립습지센터 정밀조사 결과 자료를 받은 뒤 주민·환경단체 설명회를 통해 의견을 듣고 방안을 조율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