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도심에 있는 동해남부선 고가 철길 아래 산책길 모습.
부산에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된 지난 15일 연제구 거제동에 있는 동해남부선 거제역 근처 고가 철길 아래서 산책 나온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거제동 주민 배아무개(75)씨는 “예전에는 온갖 쓰레기가 나뒹굴어 이곳을 멀찍이 피해 다녔다. 이렇게 산책길로 잘 단장해놓으니, 약속 없이 나와도 언제나 볼 수 있는 ‘산책길 동무’들이 생겨 마냥 좋다”고 웃었다.
부산진구 하마정네거리에서 연제구 교대역을 거쳐 동래구 원동교에 이르는 6㎞ 구간의 동해남부선 고가 철길 아래는 오랜 시간 황량한 빈터로 방치돼 있었다. 쓰레기가 쌓이고, 가로등도 없이 동네 주민들은 접근조차 꺼렸다. 이렇게 버려진 땅에 부산시가 철도시설공단과 협약을 맺고 ‘그린라인파크’ 사업을 시작한 게 2016년 12월이다. 고가 철길 아래 빈 공간을 산책길로 만드는 공사였다.
160억원이 투입된 공사는 최근 마무리됐다. 주민 김아무개(71)씨는 “다리를 다쳐 병원에 있다가 며칠 전 퇴원한 뒤부터 이곳에서 조심히 걸어 다니며 재활훈련을 하고 있다. 어깨와 팔 등 다른 운동시설도 이용해 건강을 챙기고 있다”고 만족스러워했다.
부산 도심에 있는 동해남부선 고가 철길 아래 산책길에 설치된 운동기구에서 주민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거제역에서 길을 따라 부산교대 방면으로 가는 구간 곳곳에는 애기동백나무, 흰 줄무늬 비비추, 수호초 등의 나무들이 심어졌고, 쉼터와 운동시설, 안내판도 설치됐다. 안전사고를 막고 치안을 관리하기 위한 폐회로텔레비전도 세워졌다. 미세먼지가 낀 날이었지만, 산책로 곳곳에선 걷거나 뛰는 주민이 적지 않았다. 동해남부선 거제역에서 교대역까지 매일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는 신아무개(51)씨는 “남편 말을 듣고 동네 체육관을 다니려고 했던 계획을 바꿔 매일 이곳에서 운동하고 있다. 가끔 철길로 오가는 기차 소리가 시끄럽지만 견딜 만하다”고 했다.
부산 도심에 있는 동해남부선 고가 철길 아래에 있는 옛 동해남부선 온천천 폐철교.
교대역을 지나 원동교 쪽으로 가면 온천천을 잇는 옛 동해남부선 폐철교가 나온다. 1931년 준공된 길이 92m에 폭 4.3m의 단선 철로가 놓인 폐철교는 그동안 안전 문제로 시민이 접근할 수 없었다. 안전진단을 마친 이 다리에는 보행자가 걷기 편하도록 나무 데크가 깔렸다. 일부 구간 바닥에는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도록 강화유리도 설치됐다. 이곳을 걷던 박아무개(78)씨 부부는 “흉물처럼 버려진 폐철교에 올라보니 풍경이 달라 보인다. 온천천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어 산책을 나오면 한참을 머무르곤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영동 기자
ydkim@hani.co.kr
부산 도심에 있는 동해남부선 고가 철길 아래 산책길 구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