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가 공구상 철거를 반대하며 을지로 일대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서울시가 최근 철거 논란이 빚어진 을지면옥 등 을지로 일대 오래된 가게와 공구상 거리를 보존하기로 하고 올해 안으로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현재 재개발 사업시행인가 신청이 끝난 공구상가 밀집지역은 종합대책을 마련할 때까지 재개발 사업이 중단된다. 낙후된 도심 환경에 대한 정비를 요구해 온 청계천·을지로 일대 토지 소유주들은 “서울시가 감성에 치우친 정책으로 절차를 밟아 추진되고 있는 재개발 사업을 뒤집었다”고 반발하고 나서, 앞으로도 이 사업을 둘러싼 논란은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강맹훈 서울시 도시재생본부장은 23일 브리핑을 열어 “그동안 역사문화자원에 대해 최대한 ‘보존’ 원칙을 지켜왔지만, (중구 세운상가 일대)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정비사업 계획이 역사도심기본계획 중 생활유산을 보존하는 내용을 반영하지 못한 채 추진됐다”며 “이제라도 정비계획에 반영해 역사문화자원을 보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올 연말까지 관련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시는 2015년 역사도심기본계획을 세워 사람들에게 기억돼 이어져 내려오는 유무형 자산을 ‘생활유산’으로 보존하고 있다. 세운3구역 안 을지면옥, 양미옥 등의 식당도 생활유산에 포함된다. 하지만 이는 법제화 된 제도가 아니어서 재개발 과정에서 해당 건물 등이 무분별하게 철거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라도 생활유산의 취지를 살려 원형을 보존하겠다는 것이 시의 계획이다.
윤호중 서울시 도시활성화과장은 “생활유산 상가 건물을 재개발 구역에서 제외하는 방식으로 상가를 보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현재 중구청에 사업시행인가 신청이 완료된 상태인 공구상가 밀집지역 수표도시환경정비구역(수표구역)은 종합적인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중구청이 사업시행인가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는 방식으로 사업을 중단하기로 했다.
변창흠 세종대 교수(행정학)는 “사업 막바지 철거 단계인 세운 3-1, 3-4·5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하더라도 사업 추진 초기 단계인 수표구역을 중단시킨 것은 잘한 결정으로 보인다”며 “다만 남기기로 결정한 을지면옥, 양미옥 등이 전체 구역 내에서 조화롭게 보전되도록 신경 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의 발표에 공구상 철거 등을 반대해 온 상인과 시민들은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박은선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활동가는 “구체적인 대책이 제시되지 않은 점은 아쉽지만, 서울시가 철거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강훈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부본부장은 “서울시 대책이 구체적이어야 하지만, 도심의 옛것을 보존하겠다는 방향성을 재확인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변창흠 세종대 교수(행정학)는 “사업 막바지 철거 단계인 세운 3-1, 3-4·5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하더라도 사업 추진 초기 단계인 수표구역을 중단시킨 것은 잘한 결정으로 보인다”며 “다만 남기기로 결정한 을지면옥, 양미옥 등이 전체 구역 내에서 조화롭게 보전되도록 신경 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청계천·을지로 일대 땅주인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땅 주인들로 꾸려진 ‘세운3구역 토지주 420인’은 “서울시가 무려 3년 동안 건축심의 및 사업시행인가 절차까지 마쳐 추진되고 있는 재개발 사업을 이제 와서 전면 재검토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서울시 스스로 지역 상인의 이주를 독려해 놓고, 이제 와서 그 입장을 180도 바꾸는 것에 대해 우리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서울시가 지난해 12월 말 도시환경개선의 목적으로 세운재정비촉진지구의 경우 주거비율을 90%까지 높이는 등 주택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는데, 한 달도 안 돼서 재개발사업을 전면 재검토한다는 것은 주민들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토지 소유주와 상인, 시민단체, 관련 전문가 등이 논의할 수 있는 협의체를 만들어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미향 채윤태 기자
aro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