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부 독재자 전두환씨가 광주의 재판정에 선다.
광주지법 형사8단독(장동혁 부장판사)은 11일 오후 2시30분 광주지법 201호 대법정에서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88)씨의 첫번째 공판을 연다. 재판부는 지난해 5월부터 네차례 걸쳐 치매와 독감 등을 이유로 공판에 출석하지 않은 전씨한테 구인장을 발부했다. 전씨는 지난 7일에야 구인 상황을 피하기 위해 부인 이순자(79)씨와 함께 출석하겠다고 밝혔다.
전씨가 광주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재판을 받는 것은 처음이고, 광주를 방문하는 것도 1988년 퇴임 뒤 처음이다. 전씨는 재임 때엔 80년과 81년, 82년, 87년 등 5차례 방문했다. 전씨는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1996년엔 내란죄로 기소돼 1심에서 사형, 3심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1997년 12월 김대중 당시 대통령 당선자의 요청에 따라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사면·복권돼 석방됐다. 그러나 전씨는 처벌을 받은 이후에도 자신을 정당화하는 ‘2차 범죄’를 저질러 이번에 다시 기소됐다.
이번에 기소된 이유는 전씨가 2017년 4월 낸 회고록에서 5·18과 관련해 70여가지의 사실을 왜곡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는 “5·18 당시 헬기 기총소사(기관총 사격)는 없었던 만큼 조비오 신부가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는 것은 왜곡된 악의적 주장이다. 조 신부는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조 신부의 유가족은 같은 달 27일 전씨를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검찰은 이듬해 5월3일 그를 재판에 넘겼다.
지난 4월 전두환 회고록 발간에 대해 광주 5·18기념재단 사랑방에서 5·18기념재단과 5월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 대표들이 대응방안을 밝히고 있다.
재판의 쟁점은 헬기 사격이 허위 사실인지, 회고록을 쓸 때 이 내용이 허위라는 인식과 의지가 있었는지(고의성)로 압축된다. 헬기 사격은 이미 국방부 조사와 검찰의 수사를 통해 객관적 증거가 확보됐다. 고의성이 있었는지는 법적 공방이 예상된다. 전씨 쪽은 몰랐다고 주장하겠지만, 검찰은 적어도 미필적 고의를 입증해 유죄를 끌어낸다는 방침이다. 김정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장은 “회고록은 2017년 4월3일 출간됐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전일빌딩에서 헬기 사격 탄흔 150여개를 확인했다고 발표해 언론 매체들이 대서특필한 날짜는 석달 전인 같은 해 1월12일이었다”고 말했다.
광주 시민들은 전씨 재판에 높은 관심을 보이면서도 감정적으로 대응해선 안 된다고 삼가는 분위기다. 5월단체와 시민단체는 전씨가 통과하는 길목에서 손팻말을 들고 ‘인간 띠 잇기’를 열기로 했다. 광주지법 앞에는 당시 광주 상공에 헬기가 떠 있는 사진들을 전시한다.
연희동 전씨 집 앞도 혼잡이 예상된다. 이날 아침 7시30분께 보수단체 회원 수백명이 ‘광주재판 반대’ 집회를 전씨 집 근처에서 열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의 광주행엔 서울 서대문경찰서 소속 2개팀 11명의 경찰관이 동행한다. 평소 전씨를 경호하는 5명 안팎의 인력도 함께 움직인다.
자택을 나온 전씨가 별도의 말을 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1995년 12월2일 검찰로부터 소환 통보를 받은 전씨는 연희동 집 앞에서 조사에 불응한다는 ‘골목 성명’을 발표한 뒤 경남 합천의 고향으로 간 바 있다. 당시 전씨는 검찰 수사를 ‘정치보복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안관옥 정대하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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