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 민주화운동 관련 피고인으로 11일 광주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전씨는 2017년 4월 출간한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고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2019.3.11 연합뉴스
5·18 민주화운동 유혈진압의 최종 책임자인 전두환(88) 전 대통령이 ‘피고인’ 신분으로 광주 법정에 섰다. 국민의 시선이 쏠린 재판정에서 전씨는 계엄군의 헬기사격과 자신의 명예훼손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관련기사 2·3·4면
광주지법 형사8단독(장동혁 부장판사)은 11일 오후 2시30분 광주 지산동 형사법정 201호에서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전씨의 첫 공판을 열었다. 이날 공판에는 광주지검 검사 4명과 피고인 전씨, 법률대리인 정주교 변호사, 신뢰관계인 이순자씨 등이 출석했다. 방청석에서는 전씨를 고소한 조 신부의 조카 조영대 신부를 비롯해 취재진과 경호원, 전씨 측근 인사와 5월단체 회원 등이 재판을 지켜봤다.
공판은 판사의 인정신문과 검사의 공소사실 낭독, 변호인의 모두진술 차례로 1시간16분 동안 진행됐다. 검찰은 “전씨는 2000년대부터 회고록 준비를 시작했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2015년 초고를 만드는 등 출간을 주도했다. 80년 5월 광주 일대에서 헬기사격이 있었음이 군 내부 문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국방부 조사 등으로 확인됐는데도 허위사실을 적시한 회고록을 만들어 전국에 배포해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공소 요지를 밝혔다. 검찰은 또 “전씨가 5·18 당시 보안사령관, 합수본부장 등의 직책을 수행 중이어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고, 회고록 출간 석달 전에도 다수의 헬기사격 탄흔이 확인됐던 만큼 허위사실을 특정 다수인에게 고의로 유포해 고인의 사회적 평가와 명예를 훼손한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전씨 쪽은 헬기사격이 사실인지, 조 신부에 대한 표현에 고의성이 있었는지 등을 다투는 전략으로 맞섰다. 정주교 변호사는 “헬기사격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고, 대중의 논쟁이 있는 사안이다”라고 공소사실을 반박했다. 또 대법원이 기각한 관할지 변경을 다시 신청하기도 했다. 정 변호사는 “광주는 피고인의 주소지도 범죄의 발생지도 아니다. 회고록을 만든 출판사가 경기 파주이기 때문에 광주지법의 관할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전씨는 2017년 4월3일 출판한 회고록에 “광주사태 당시 헬기 기총소사는 없었던 만큼 조 신부가 헬기사격을 목격했다는 것은 왜곡된 악의적 주장이다. 조 신부는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다”라고 썼다. 조 신부의 조카는 같은 달 27일 전씨를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검찰은 이듬해 5월3일 그를 재판에 넘겼다. 사자의 명예를 훼손하면 징역 2년 이하 또는 벌금 500만원 이하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이날 낮 12시33분쯤 광주지법 후문에 도착한 전씨는 “발포 명령을 부인하느냐”는 취재기자의 질문에 “이거 왜 이래”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광주시민에게 사과할 용의가 없느냐” “헬기사격을 인정하느냐”는 물음에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경찰은 광주지법 주변에 10개 중대 1200여명을 배치했지만 별다른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음 공판은 4월8일 열린다. 증거 정리를 위한 공판준비기일로 진행되는 만큼, 전씨는 출석 의무가 없다.
광주/안관옥 정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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