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청주 수암골 벽화 골목. 오윤주 기자
충북 청주를 안은 우암산 자락에는 ’수동’이란 이름의 동네가 있다. 이웃 우암동과 더불어 ‘수암골’로 불리는 곳이다.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좁은 골목이 구불구불 미로처럼 이어진 이곳에선 자칫 한눈팔고 걷다 보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
마을의 기원은 1945년 해방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갈 데 없는 이들이 판자를 이어 집을 지었고, 한국전쟁 대 피란민도 이곳으로 몰려들어 마을을 이뤘다. 청주의 대표적 ‘달동네’요, 빈민가였다. 1970년대 이후 재개발, 주거환경 개선 사업 등이 이어졌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변화는 2008년 충북민족미술인협회 이홍원 화백 등이 마을에 붓을 대기 시작하면서 나타났다. 회색투성이 무채색 벽에 꽃과 나비, 나무와 숲, 익살스러움 등을 담은 그림이 앉자, 마을은 유채색으로 변했다. 이때부터 부산 감천마을, 경남 통영 동피랑 등에 비견되는 벽화 마을로 명성을 얻었다.
25일 오후 청주 수암골 벽화 골목. 골목은 텅 비었지만 벽화 속 정겨운 모습이 주민들 대신하는 듯하다. 오윤주 기자
마을을 바꾼 건 드라마·영화였다. 2009년 <카인과 아벨>(SBS), 2010년 <제빵왕 김탁구>(KBS), 2011년 <영광의 재인>(KBS) 등에 이어 지난해 영화 <언니>가 이곳에서 촬영됐다. 김경식 청주대 교수(영화학)는 “수암골은 1970~80년대 모습을 그대로 담은 생생한 영화 세트장 같은 곳이다. 요즘은 카페·벽화 등이 들어서면서 신·구 조화까지 이뤄져 다양한 모습을 담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원주민들은 마을이 유명해지고, 관광객이 몰리는 게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사람과 함께 돈도 몰렸고, 허름한 옛집들을 비집고 휘황찬란한 카페들이 들어서면서 불야성을 이뤘다. 청주의 대표적 ‘젠트리피케이션’ 현장이란 볼멘소리도 나왔다. 그나마 지난해부터 60여 가구 원주민과 새 상인들이 상생을 위해 머리를 맞대기 시작했다. 이들은 수요일마다 열리는 도시재생대학에서 신구 조화와 함께 마을 공동체를 키우기 위한 논의를 하고 있다.
청주시는 5월12일까지 수암골 곳곳에서 봄 스케치 행사 ‘수암골을 그리다’를 진행한다. 나무 액자에 수암골 골목·풍경을 그리고, 이야기를 담은 벽화 타일을 만들 수 있다. 추억의 달고나 체험 등도 펼쳐진다. 인디밴드 등의 재능기부 공연도 이어진다.
오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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