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남지은 청년정의당 서울시당위원장이 서울시의 일방적인 청년자율예산 삭감에 반대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승욱기자
“2030세대 청년들이 희망을 갖는 ‘청년서울’을 만들겠다”(오세훈 서울시장)던 서울시가 내년 청년 관련 예산을 편성하면서 청년들이 참여해 짜는 ‘청년자율예산’을 반토막 낸 것으로 확인됐다. 시에서 직접 편성해 청년들에게 베푸는 예산을 대폭 늘린 것과 대조적이다. 청년을 시정의 동반자가 아닌 혜택을 받는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오 시장의 태도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한겨레> 확인 결과, 서울시는 청년들 숙의, 투표 과정을 거쳐 청년정책네트워크가 제안한 청년자율예산 143억원(11개 사업) 가운데 47%를 삭감한 77억원만 예산안에 반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11개 사업 가운데 ‘저탄소 시민행동 유인체계 연구’(2억5천만원)는 예산이 전액 삭감됐고, 오 시장이 선거운동 때부터 강조했던 1인가구 지원 사업은 78%, 청년 마음건강 지원 사업은 43%, 자치구 청년정책 거버넌스 활성화 사업은 41%가 삭감됐다.
‘관’이나 ‘공무원’의 시선이 아닌, 청년들 자신의 시선으로 봤을 때 필요한 정책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지난 2019년(2020년 시행) 도입된 청년자율예산은 올해로 3년차를 맞는다. 예산 편성에 전문성이 요구되는 만큼, 시정참여기구인 ‘청년정책네트워크’에서 청년위원들을 선발해 숙의 기간과 투표를 통해 예산안을 마련한다. 올해 1∼3월 청년위원 656명이 선발됐고, 이어 4∼8월 숙의 기간을 거친 뒤 참여를 원하는 청년들(투표수 기준 6037건)이 투표해 11개 사업을 만들었다.
반면, 서울시가 청년층에게 안겨주는 ‘현금성 선물 보따리’ 자체는 두둑해졌다. 19∼24살에게 대중교통 지원비를 최대 10만원까지 지원하고, 미취업 청년 2만명에게 월 50만원씩 최대 6개월간 지원한다. 청년 구직활동 지원에 2063억원, 청년주거지원에 7373억원, 청년 복지서비스에 378억원 등 모두 9813억원을 쓰겠다는 예산안을 마련했다. 분류법이 매년 달라져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이는 지난해 시가 ‘획기적 청년 지원 사업’으로 편성한 4977억원(시 자체 분류 기준)에서 많이 늘어난 수치다.
청년정의당은 이날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청년자율예산 삭감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남지은 청년정의당 서울시당위원장은 “청년세대가 희망을 품는 청년서울을 만들겠다던 오세훈 시장의 약속은 반년 만에 거짓말이 되었다”며 “전체 예산과 비교해 얼마 되지 않지만 청년이 단순히 정책의 수혜자가 아닌 시정의 동반자가 되는 과정의 결과물인데, (오 시장이) 너무 손쉽게 폐기해버리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관련해 선필호 시 청년참여팀장은 “청년에게 복지를 제공하는 서울시 예산은 오히려 작년보다 늘었다는 점을 주목해달라”며 “청년정책네트워크에서 올린 예산 중 전액 삭감된 예산은 다른 부서에서 추진 중인 사업과 중복된다. 사업 수도 1개를 제외하면 모두 살아 있고, 필요에 따라 사업 규모를 조정했다”고 했다.
이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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