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유병두씨가 대흥이발관 임대차계약 서류를 보고 있다. 이승욱 기자
“손님은 줄어들고 거리에는 사람이 없는데…. 임대료가 5만원 넘게 오르면 버티기 힘들어요.”
지난 3일 오후에 찾은 인천 동구 금곡동 배다리 헌책방거리. 손님 맞을 채비를 하던 대흥이발관 이발사 유병두(79)씨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최근 들어 갑자기 임대료가 올라, 주변 시세대로라면 (재계약은) 어려울 것 같아요.”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점령한 개항장에서 밀려난 조선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인천 배다리거리가 때아닌 임대료 인상 열풍에 몸살을 앓고 있다. 몇년 전 텔레비전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로도 널리 알려진 곳인데, 관할 자치단체의 구시가지 활성화 사업이 생각지 못한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임대료 걱정을 하는 것은 유씨뿐이 아니었다. 이발관 인근에서 헌책방을 운영하는 곽현숙씨는 “수십년 한자리에서 장사해온 우리는 아직 (집주인이) 임대료 얘기는 없다. 하지만 다른 점포 임대료가 오르는 것을 보니, 우리도 오를 수 있겠다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원주민들의 갑작스러운 임대료 걱정은, 관할 동구청이 배다리거리에 자리잡는 청년·예술인들에게 월세의 80%까지(50만원 이내) 지원하는 ‘배다리 문화예술의 거리 지원사업’이 자리를 잡으면서 시작됐다. 청년·예술인들을 도와 거리를 되살려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사업인데, 최근 3년 지원 대상 점포는 22개까지 늘었다.
지난달 31일 인천 동구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있는 대흥이발관 모습. 이승욱 기자
문제는 구청의 임대료 지원이 임대료 인상 요구의 빌미가 됐다는 점이다. 지원사업에 선정돼 지난해 입점한 점포 중 8곳은 30만~80만원이던 기존 임대료가 10만원 이상씩 올랐고, 심한 경우 임대료가 두배 오른 곳도 있었다. 임대료 인상 요구는, 지원 대상이 아닌 점포로도 확산돼 갔다.
배다리거리에서 가죽공방을 운영하다 지난해 5월 동구청 근처로 이사했다는 박금례씨는 “임대료를 월 30만원 내고 있었는데, 집주인이 ‘지원사업에 선정된 사람에게 월 70만원에 내놔야겠다’고 얘기해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며 “구청이 외부에서 들어온 사업자에게는 파격적인 지원사업을 하면서 토박이 상인들을 돌보지 않는 게 화가 난다”고 말했다.
인근 공인중개소 대표는 “이곳은 개발 여력이 없는데도 지원사업 영향을 받아 (지난해에만) 점포당 대개 15만원 이상 올랐다”고 했다. 이는 인천지역 상업용 부동산 평균 임대가격(한국부동산원 자료)이 2019년 1분기 ㎡당 8800원에서 2021년 1분기 8300원으로 하락한 흐름과도 대비된다.
지방정부 지원 사업이 토박이 임차인을 내쫓는 ‘관트리피케이션’(관+젠트리피케이션)은 지원 대상인 청년·예술인에게도 달갑지 않다. 임대료가 올라 원주민이 쫓겨난 뒤에는 남은 예술인들이 임대료 부담을 안게 되기 때문이다. 대구 ‘김광석 거리’, 광주 ‘양림동 펭귄마을’ 등에서 확인된 패턴이기도 하다.
배다리거리에서 미술관을 운영하는 민운기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 간사는 “새로 들어온 외부인이 동구로부터 임대료를 지원받는 동안에는 괜찮겠지만, 지원기간이 끝난 뒤에는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마을을 떠날 가능성이 있다. 이때 마을은 공동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원인을 제공한 인천 동구청은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동구 문화홍보체육실 쪽은 “지역이 변화하는데 (이런저런) 문제들이 없을 수 없다. 여기 살고 있는 주민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건물주에게 임대료를 기존과 같이 받아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다만 일부는 소통이 잘 안돼 임대료가 급격하게 오른 곳도 있었다. 새로 마을에 들어선 청년·예술인들이 기존 상인과 네트워크를 형성해 떠나지 않고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협력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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