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전 9시30분께 김성규 전국민주일반노조 경기본부장이 5월 발생한 경남 헬기 사망 사고와 관련해 책임자 사과를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승욱 기자
“현종이 결혼식도 못 보겠네.”
15일 오전 9시30분께 인천 서구에 있는 30미터 높이 통신탑 앞에 서 있던 김진오 전국민주일반노조 에어팰리스 지부장의 휴대전화에서 이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목소리 주인공은 지난달 12일부터 통신탑에 올라 농성 중인 김성규 전국민주일반노조 경기본부장이다. 김 지부장이 “몰래 나와서 결혼식 들르면 되죠”라고 농담을 하자, 휴대전화 건너편에서 김 본부장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고공농성은 지난 5월16일 경남 거제시 선자산 꼭대기 근처 상공에서 산불진화용 헬기가 추락해 기장과 정비사 박병일씨가 숨진 뒤 시작됐다. 이 헬기는 경남소방본부가 항공사 에어팰리스로부터 임차해 쓰던 것이었고 사망자들 모두 에어팰리스 소속이다. 사고 뒤 3개월 남짓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의 원인 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노조는 사고 책임이 에어팰리스에 있다고 보고 회사 쪽에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노사 갈등은 올해 초 시작한 임금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격화되고 있다. 지난달 4일 노동위원회 조정이 결렬되면서 일부 조합원이 벌이던 농성이 노조 차원의 공식 파업으로 전환된 것이다.
파업이 시작된 뒤 더불어민주당 김주영 의원과 민주당 을지로위원회의 중재가 있었지만, 노사 양쪽의 갈등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파업 전 일부 조합원이 대체휴가를 내고 벌인 장기 농성이 업무 방해에 해당한다며 해당 조합원에게 해고 등 중징계 처분을 내린 것도 갈등을 키웠다. 최근엔 회사가 ‘헬기 사용이 빈번한 산불예방기간에는 파업을 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노조에 요구한 게 새로운 논란을 불렀다.
김주영 의원실 쪽은 “현재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산불예방기간에 파업을 할 수 있는지를 두고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 문제는 중노위 판단이 나온 뒤 얘기하자고 에어팰리스 쪽에 요구하지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회사 쪽은 “무단결근을 하며 농성을 벌이는 행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산불예방기간 중 파업 금지 각서를 요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는 지난 5월 사망사고와 관련해 에어팰리스 쪽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부산지방고용노동청에 고발한 상태다.
이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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