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군함도에서 이재갑 작가가 찍은 방파제 너머 조선인 숙소. 이재갑 사진작가 제공
영상 속에 사방이 어두운 탄광 갱도가 나온다. 칠흑 같은 공간에서 의지할 만한 것은 희미한 불빛뿐이다. 갱도 열차와 선로가 부딪치며 나는 덜그럭 소리는 불안감을 자극한다. 1010m에 달하는 수직갱도를 묘사한 영상은 마치 영화 <군함도>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했다.
15m에 달하는 구조물 안에서 10분 10초 동안 재생되는 이 영상은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이 강제징용됐던 군함도의 실제 모습을 형상화한 미디어 아트다.
군함도 강제징용의 역사를 조명하는 '군함도 헤드랜턴' 전시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19일부터 다음달 15일까지 열린다. 서울시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공동주최하는 이번 전시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일제강점기 말 군함도로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은 당시 하루 12∼16시간 강제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제대로 된 급여도 받지 못했다.
전시회에서는 군함도와 관련된 자료와 사진, 영상물이 전시된다. 전시장 복도 양쪽에는 일제 강제동원 관련 기록작업을 꾸준히 해왔던 이재갑 사진작가의 사진이 걸렸다. 특히 전시가 시작되는 입구에는 군함도의 조선인 숙소 전경을 찍은 대형 사진이 걸려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군함도에서 노역하다 사망한 조선인 명부와 실제 강제징용 피해자인 김순길씨의 증언이 담긴 일기도 공개된다. 김순길씨는 미쓰비시중공업 나가사키 조선소로 징용된 피해자이자, 원자폭탄 피폭 피해자였다.
전시 첫날인 이날 오후 2시부터는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토크 콘서트에는 서해성 3·1운동 10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 총감독, 일본의 시민단체인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나가사키 인권모임)의 시바타 도시아키 사무국장, 기무라 히데토 활동가, 이재갑 사진작가가 참석했다. 나가사키 인권모임은 1980년대부터 재일 조선인 원폭 피해자가 얼마나 되는지를 조사해온 단체다. 조사 과정에서 조선인의 군함도 강제동원 사실이 알려지게 됐다.
서해성 총감독은 “지금이 서대문형무소를 지은 지 111년 1개월”이라며 “이 공간에 하시마 탄광과 관련된 전시를 하기에 적절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자신의 부모도 원폭 피해자인 시바타 사무국장은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 사실을 무시하는 이유로 “일본이 원폭 피해를 당한 유일한 나라라는 점을 강조해 조선을 침략한 역사를 없애려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