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에 있는 통합놀이터인 꿈틀꿈틀 놀이터. 서혜미 기자
정영미(49)씨의 아이는 중증중복장애인이다. 놀이터에서 또래들과 뛰어놀 수도, 놀이기구를 타고 놀 수도 없다. 휠체어가 없으면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이 아이에게 놀이터는 안전사고 위험에 노출된 공간일 뿐이다.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이 모두 놀 수 있는 놀이터를 지향하는 ‘통합놀이터’도 다르지 않다. 휠체어 그네나 휠체어 시소처럼 장애아동도 이용할 수 있는 놀이기구는 통합놀이터에도 들어서지 못한다. 법에 제시돼 있지 않은 형태의 놀이기구는 안전인증을 받지 못하고, 안전인증을 받지 못한 놀이기구는 놀이터에 설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씨는 지난겨울부터 서울 마포구 합정역 인근에 있는 교회에 나간다. 놀이터에서 놀 수 없는 아이가 ‘놀이’를 경험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이 교회는 2018년 10월부터 장애아동을 위한 음악·미술 프로그램을 한달에 한번씩 열고 있다. 집에서 교회까지는 차로 30~40분이 걸리고 휠체어를 탄 아이를 차에 태워 이동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주변에 아이가 마음 놓고 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아이가 장애를 가졌어도 일상을 행복하게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정씨는 말한다.
장애아동의 ‘놀 권리’가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놀 권리는 유엔 아동권리협약에서 선언한 4가지 권리인 생존권, 보호권, 발달권, 참여권 가운데 발달권에 속하는 권리다. 전국에 수많은 놀이터가 있지만, 장애아동이 안전하게 놀 수 있는 놀이터는 찾아보기 힘들다. 현행법에 장애아동이 탈 수 있는 놀이기구 유형을 정해놓지 않은 탓이다. 어린이 놀이기구는 행정안전부의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의 어린이제품 안전특별법상의 인증을 받아야 놀이터 안에 설치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안전인증을 받을 수 있는 놀이기구의 유형에는 휠체어에 오른 채 탈 수 있는 그네나 시소, 팔 힘으로 오를 수 있는 미끄럼틀 등은 포함돼 있지 않다.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 내에 설치된 휠체어 그네. 서혜미 기자
이런 이유에서 국내에 설치된 대다수 장애아동 놀이기구는 법 위반을 피하려고 놀이터가 아닌 별도 공간에 분리 설치돼 있다. 휠체어 그네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5월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 통합놀이터가 조성되면서 들어선 휠체어 그네는 언뜻 보면 놀이터 안에 설치된 것처럼 보이지만, 법적으로 휠체어 그네가 있는 공간은 놀이터가 아니다.
장애인 관련 시민단체들은 경직된 법 때문에 장애아동의 놀 권리가 충족되지 못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에서 통합놀이터 설치 운동을 해온 김연금 조경작업소 울 소장은 “우리나라의 (놀이터·놀이시설) 안전기준은 장애아동의 놀이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며 “모든 아이를 위한 놀이를 전제로 한 안전기준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경우, 장애인법에 장애인의 권리를 폭넓게 보장하기 위해 놀이공간과 놀이시설 접근을 보장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에 따라 에이피에이(APA·Accessible Play Areas)라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비장애아동과 장애아동이 모두 이용할 수 있도록 놀이터와 시설에 대한 규격 등을 제시한다. 휠체어 두 대가 지날 수 있을 정도의 폭으로 길을 만들고, 장애아동도 놀이기구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경사로를 설치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국내에서는 장애인 관련 시민단체와 공익인권변호사단체 등이 장애인의 놀 권리를 위해 2018년 ‘통합놀이터 법 개정 추진단’을 만들었지만, 국회의 무관심으로 관련 법 개정은 사실상 방치돼 있다. 추진단은 모든 아동을 위한 놀이터를 만들기 위해 21대 국회가 들어선 뒤 본격적으로 법 개정에 나설 예정이다.
서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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