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숨진채 발견된 지난 10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직원들이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 등으로 고소한 피해자 쪽이 기자회견을 열어 진상규명을 요구하자, 서울시는 곤혹스러워하면서도 진상조사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성추행 혐의 등으로 고소가 된 박 시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음에 따라 지난 10일 경찰은 해당 고소사건에 대해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린 바 있다. 이 고소건에 대한 형사사법 절차가 종결돼 피고소인의 방어권 등이 확보될 수 없는 상황에서 진상규명이 어디까지 가능할지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피해자와 연대하고 있는 여성단체들은 13일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시 차원의 진상규명과 함께 사건에 대한 경찰의 입장을 요구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이 사건은 전형적 직장 내 성추행 사건임에도 피고소인이 망인이 돼 공소권 없음으로 형사 고소를 진행 못 한다. 그러나 이 사건은 결코 진상 규명 없이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했다. 이어 좀 더 직접적으로 “경찰은 현재까지의 조사 내용을 토대로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혀달라”고 말한 뒤, “서울시는 본 사건 피해자가 성추행 피해 입었던 직장이다. 규정에 의해 서울시는 사건의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조사단을 구성해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다.
서울시는 박 시장의 장례 마지막날에 열린 기자회견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황인식 서울시 대변인은 여성단체의 기자회견 도중에 이뤄진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아직 장례식 하관도 끝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의견을 발표하고 정할 입장이 아니다”라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자회견이 끝난 뒤, 해당 사안을 담당하고 있는 부서인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에서는 “진상조사 방법에 대해서 다각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사전에 서울시 여성권익담당관이나 인권담당관에 접수된 사항이 아니라 (서울시도) 언론을 보고 인지를 하게 된 사항이었다”며 “오늘 기자회견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조사를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기 때문에 조사 방법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을 처리할 때, 피해자가 여성권익담당관이나 인권담당관에 신고를 하게 되면, 시민인권보호관이 조사를 하는 절차를 두고 있다. 시는 서울시에 공식적으로 신고된 사항이 없기 때문에 인지하지 못했고, “피해자의 의사가 중요하기 때문에 섣부르게 먼저 조사를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피해자가 동료들에게 박 시장의 성추행을 알리고 도움을 구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인권담당관이나 여성권익담당관을 통해서 접수된 사실은 없었다”며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해보겠다”고 밝혔다. 시는 진상조사 방법에 대해 “기존 시스템에 따라서 할 건지, 다른 방법을 검토할 건지 조사 방법에 대해 전문가들 의견을 들어서 논의 중에 있다”고 밝혔다.
자기변호권이나 항변권이 보장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온전한 의미의 조사가 이뤄지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한 변호사는 “우선 사법적 조사는 끝이 났고 시 차원의 진상조사를 하더라도 가해자로 지목된 당사자의 항변권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피해자 일방의 주장만을 청취하게 돼 조사 자체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고 내다봤다.
서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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