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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 커피갑질에 동료 잃어…후진적 공직사회 절망했다”

등록 2021-11-04 04:59수정 2021-11-04 13:17

극단 선택 대전시 신입 공무원 동기들 얘기 들어보니
“밝고 자신감 넘치는 친구였는데 내부선 개인문제로 봐…기대 접어”
“과장보다 일찍 와서 커피 내려야” “대전시, 경찰에 떠넘겨 어이없어”
대전시청. <한겨레> 자료사진
대전시청. <한겨레> 자료사진

“선배 주무관으로부터 일찍 출근해 과장님 책상 정리, 커피·신문 챙기기를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9월26일 극단적 선택을 한 대전시 새내기 9급 공무원 고 이우석(26)씨가 가족에게 토로했다는 말이다. 이씨는 “그 말을 거절한 뒤부터 팀원들에게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다”며 “자신의 괴로움을 말하기엔 시청이 너무 폐쇄적인 곳”이라고도 했다고 한다. 유족들의 직장 내 괴롭힘 주장에 “갑질에 해당하면 관련자 징계 등 조처를 취하겠다”던 대전시 감사위는 지난 2일 오후 진실규명이 어려워 감사를 중단하고 수사를 의뢰하겠다며 경찰에 공을 넘겼다.

감사위 발표 직후 <한겨레>는 이씨와 함께 지난해 초 대전시 9급 공무원에 임용된 동기 5명과 ‘카카오톡 방담’을 나눴다. 이들은 ‘선임자 책상 정리와 쓰레기통 비우기’, ‘야근 강요’, ‘과장님 식사 챙기기’ 등 공직사회에 후진적인 문화가 여전하고, 이씨의 극단적 선택도 ‘내성적인 친구여서 그런 것’으로 치부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전했다.

동기인 이씨 사례는 “누구한테나 일어날 수 있었던 사건”이라고 입을 모은 이들은 “개선될 것 같지 않다”, “앞으로 정말 무슨 기대도 하지 말아야지 싶어요”라고 말했다. 대화에 참여한 이들은 신원 노출이 우려돼 가명으로 처리했다.

‘커피·신문 챙기라’고 얘기 들어

―동기들이 기억하는 우석씨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박세영(이하 박) “밝고 자신감 넘치고 멋진 동기였어요.”

김준서(이하 김) “많은 친분은 없었지만, 몇번 인사는 한 적이 있습니다. 주위 동기들한테 들은 바로는 사교적이고 밝은 분으로 들었어요.”

장휘선(이하 장) “일도 잘하고 동기들하고도 너무 잘 지냈어요. 7월에 그 부서로 가고 나서 표정도 너무 안 좋아지고 살도 빠져서 너무 놀랐어요.”

―우석씨는 선배한테 책상 정리 등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던데, 비슷한 경험이 있나요?

“차관(선임 주무관)님이 과장님 쓰레기통 비우기나 책상 정리 같은 걸 챙겨야 한다고 하셨어요.”

“신문 챙기기, 커피·차 내오기.”

―일찍 출근하라는 얘기는 없었고요?

“그런 일을 하려면 당연히 일찍 가야 해요.”

이영순(이하 이) “일찍 출근하라고 안 해도, 저 일을 하라고 해요.”

“구체적인 요구는 없었지만, 적어도 과장님보다 일찍 와서 신문 깔아둬야 하고 티타임 전엔 커피 내려둬야 하죠. 늦을까 봐 부담스럽죠.”

대전시 공무원들의 말. &lt;한겨레&gt; 정리
대전시 공무원들의 말. <한겨레> 정리

야근 강요, 과장 밥 챙기기 관행 여전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다른 관행이 있을까요?

“야근 강요, 과장님 식사 챙기기요.”

“과장님 식사를 팀끼리 돌아가면서 챙겨드리는데, 그 비용을 팀비로 충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어요.”

“야근 강요는, 일찍 가면 일 없는 줄 안다고 없어도 (일)하는 척이라도 하라고 들은 적이 있어요.”

―선배들이랑 세대 차이 느낄 때도 있을 것 같아요.

“고충(상담신청)을 쓰려고 하면 좀 나약하고 일 못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게 좀 이해가 안 갔어요. 팀장님, 과장님께 먼저 말씀드리는 게 예의라는 문화가 있는데, 사이가 안 좋으면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걸 쓰면 결국 어떻게든 자기한테 해로 돌아온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최서민(이하 최) “실질적으로 다음 정기인사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갑질이나 괴롭힘을 경험한 적이 있나요?

“내가 죽어야 이 사람들이 나한테 조금이라도 미안해할까라고 느낄 만큼, 이성적인 판단이 안 되는 상황까지 갔었습니다.”

“여기서 고충 쓰면 일 못하는 직원으로 소문난다고 하셔서 그만두고 싶었어요.”

“직폭,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니라 폭력이죠”

―선배들과 업무협조는 잘 되나요?

“전반적으로 인수인계가 잘 안되고 코로나로 기본교육도 부실한 것 같아요.”

“다들 바쁘셔서 물어보기 눈치 보여요.”

―공무원이 되고 나서, 실망한 점은?

“학폭도 큰 논란이 되고 잡아가는 사회 분위기인데, 직폭은 어떻게 더 심해질까요? 괴롭힘이 아니라 폭력이죠.”

“부하 직원 폭행해서 징계받아도 그대로 사무관 승진해서 잘 다니시는 분도 계세요.”

“시 대응에 절망…무슨 기대도 안해”

―대전시가 오늘 감사 안 하고 경찰에 수사 의뢰하겠다고 발표했어요.

“어이가 없죠.”

“다 끼리끼리 아는 사람일 것 같아서 무마할 것 같아요.”

“혹시나 하고 기대했는데 역시나예요.”

―시 어떤 부분이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개선될 것 같지 않아요.”

“개선될까요? 일부 다른 직원들은 여전히 그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더는 언급도 없는데…. 이렇게 뉴스도 나오는데 부서원 누구 하나 직위해제든 무슨 조처도 없고, 나 포함 누구한테나 일어날 수 있었던 사건인데 이렇게 처리되는 거 보면서 앞으로 정말 무슨 기대도 하지 말아야지 싶어요.”

“한 팀장이 ‘그 친구가 내성적이었나 봐’ 그러더군요. 내성적인 사람은 그럼 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나요? 그런 분들이 대부분인 조직에서 과연 제가 얼마나 근무할지 모르겠네요.”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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