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하 묘지 18매. 백자판을 굽고 청화를 사용해 반듯한 해서체로 썼다.
조선 후기 무신인 이기하의 신분과 행적 등을 기록한 ‘묘지’ 특별전이 4일부터 6월5일까지 충남 공주 충남역사박물관 전시실에서 막을 올렸다. 묘지는 망자의 인적과 행적 등을 사기판·돌 등에 새겨 무덤에 묻는 기록물을 말한다.
이기하(1646~1718)는 한산이 본관으로, 목은 이색의 후손이다. 그의 묘지는 가로 18㎝, 세로 22㎝ 크기의 백자청화 18매다. 백토를 초벌한 뒤 청화로 그의 가족사, 업적, 일화 등을 3400여자의 해서체로 기록했다.
충남역사박물관이 밝힌 묘지 내용을 보면, 이기하는 한산(서천) 이씨로 고려 말 문신 목은 이색(1328~1396)의 후손이다. 그의 증조부는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 고립된 인조를 구하려고 싸우다 전사한 무신 이의배(1576∼1637)다. 그는 선전관과 도총부도사, 삼도수군통제사를 거치고 내금위장, 포도대장, 훈련대장, 공조판서 등 요직을 역임했다. 그는 무예 가운데 칼 사용법을 개선하고, 개량 전차를 제작해 국방력을 강화했으며, 1711년에는 북한산성 축성을 맡기도 했다. 또 숙종이 신뢰해 병이 생기자 약을 하사받았으며, 병석에서 일어나 조정에 나오자 왕이 기뻐했다는 일화도 전한다.
묘지 글은 이조좌랑을 지낸 조선 후기 문신 이덕수(1673~1744)가 썼다고 기록돼 있다.
충남역사박물관 문화유산교류협력부 박진호 박사는 “이 묘지는 조선시대 사대부 묘지의 정형이다. 매수는 다른 묘지가 4~5매인데 비해 18매로 압도적”이라며 “이 묘지는 1994년 경기도 시흥에서 이천으로 이장할 당시 관 위를 덮은 상태로 수습됐다고 한다. 문화재적 가치를 밝히기 위해 전문가의 정밀 감정을 받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기하의 백자청화 묘지 18매. 1994년 이장 당시 수습됐으나 분실했다. 지난해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이 분실 문화재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반환했다.
이 묘지는 이장 이후 문중에서 보관하다 분실했으며,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이 1998년 기증받아 소장하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으로부터 분실 문화재라는 통보를 받자 사실 확인을 거쳐 지난해 원소장자인 한산 이씨 문중에 돌려줬다.
이날 특별전은 한산 이씨 문중이 묘지를 충남역사박물관에 기증해 열렸다. 개막식에는 양승조 충남지사, 최응천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 이한석 한산 이씨 정익공파 문중 대표 등이 참석했다.
양승조 충남지사는 “선조의 정신과 문화를 배우고, 보존하고 관리해 후손에게 물려주는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충남도는 전국 최초로 국외소재 문화재기금을 조성하고 도난 문화재 소책자를 제작하는 등 잃어버린 문화유산을 찾는 노력을 펼쳐왔다”며 “해외 기관에서 소장품을 기증받은 첫 사례다. 앞으로 더 많은 국외소재 문화재를 되찾고 도민들이 우리 문화유산을 더 널리 향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사진 충남역사박물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