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미(왼쪽부터), 김희경, 이선영, 김애정씨 등 홍반장팀이 24일 부여 지역공동체활성화재단에서 공익활동지원센터 관계자들과 리빙랩 실험 결과를 공유하고 있다. 송인걸 기자
충남 부여군에서 최근 반년간 이어진 실험 ‘리빙랩’이 눈길을 끈다. ‘일상의 불편함을 주민 스스로 풀어보자’란 목표 속에 추진된 이 실험은 소소하지만 그렇다고 가벼이 넘기기는 어려운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24일 부여 지역공동체활성화재단에서 이선영, 김성미, 김애정, 김희경, 김경선씨 등으로 꾸려진 ‘홍반장’팀을 만났다. 이 팀은 부여 지역공동체활성화재단 산하 공익활동지원센터(공익센터)가 지난해 7월 시작한 ‘리빙랩’ 실험에 선정된 5개 팀 중 하나다.
홍반장팀은 버려진 펼침막으로 만든 장바구니를 5일장 터에서 주민에게 약간의 보증금을 받고 빌려주는 ‘환경 실험’에 나섰다. 대여율이나 회수율 등 수치로만 따져본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한다. 장바구니를 만들기도 어려웠고 제작 비용도 녹록지 않았단다.
하지만 실패라고 속단하기엔 이르다. 홍반장팀의 실험이 의도하지 않은 변화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홍반장팀이 실험을 하는 동안 부여에 점포가 있는 축협은 종이 상자를 모두 치웠다. 홍반장팀 실험에 협조한다는 취지였지만, 사라진 종이 상자는 실험이 끝난 뒤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장날은 상자가 없다’는 주민들의 인식이 굳어지면서 너도나도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신동엽 문학관 해설사들이 꾸린 ‘전경인’팀은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견학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지식 주입 대신 아이들이 문학관을 돌아다니다 전시물을 골라 사진 찍고 느낌을 쓰는 ‘사진시’를 만드는 프로그램이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이 쓴 사진시 40여점은 문학관에 전시됐는데 반응이 뜨거웠다고 한다.
남기라 공익센터 팀장은 “한 중학생은 시인 신동엽의 등산복을 찍고 ‘나의 일생은 식물과 같다/ 나의 평생을 산과 같이 지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산에서 숨 쉬며 산다’라고 적었다”며 “기대를 뛰어넘어 놀라운 작품이 적지 않다”고 밝혔다. 팀원 송숙영(국어교사)씨는 “신동엽은 삶의 본질을 말씀하신 분이다. 아이들이 사진시를 통해 얻은 인문학적 경험은 시·문화를 이해하는 터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두희(사진가)·연선미(화가)·강환섭(서예가)씨는 ‘연꽃’을 주제로 협업체 ‘부여연꽃포럼’을 꾸렸다. 연꽃은 부여의 상징 식물이다. 또 다른 실험팀 ‘꽃가람’은 쓰레기가 쌓이는 읍내 상가 거리 4곳에서 가로등과 전신주에 꽃과 다년생 화초를 심은 걸이형 바구니를 매달고 주변을 청소했다. 팀원 최영숙씨는 “쓰레기 배출은 줄지 않았으나 쓰레기봉투가 단정하게 쌓여 눈살 찌푸리는 일이 줄었다. 화초에 물 주는 시민도 늘었다”고 말했다.
소행성팀 김한솔씨가 부여살이를 하는 청년들이 기획한 시민뮤지컬 ‘부여비트’에 출연할 시민배우를 모집하는 광고 인쇄물을 들어 보이고 있다. 송인걸 기자
김한솔씨 등 청년 3명이 참여한 ‘소행성’팀은 부여 느낌을 영상으로 제작했다. 김씨는 “부여살이를 하는 17명의 청년 가운데 ‘부여에도 사람이 산다’는 콘텐츠를 만들자고 뜻을 모은 3명이 팀을 이뤘다”고 말했다. 이들은 ‘왜 하필 부여에서?’, ‘생활비는 얼마나 들어?’, ‘넌 연애를 어떻게 해?’, ‘뭐 해서 먹고살지?’ 등의 제목으로 만든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김씨는 “청년들에게 부여 관련 정보는 물론 부여 친구들의 생각과 꿈을 보여주려 영상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셰어하우스를 만들다 로컬커뮤니티 전국네트워크와 만나 탐방 프로그램과 일년살이를 하며 부여와 인연을 맺었다.
조희철 부여군 지역공동체활성화재단 사무처장은 “1기 리빙랩 실험에 참여한 홍반장팀은 교육지원청 학부모 환경 모임, 꽃가람팀은 도시정원 모임, 소행성팀은 청년공동체의 일원으로 활동한 자생 단체다. 부여에 이런 단체가 80여개에 이른다”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2기 리빙랩 지원 단체를 공모하고 자생 단체들을 지원한다. 소소한 일상을 바꾸는 실험이 부여를 변화시키는 긍정의 힘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송인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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