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등 대전지역 시민·노동단체 회원들이 현충일을 맞아 국립 대전현충원의 김창룡 묘에서 친일 반민족 행위자 묘를 국립묘지에서 파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제공
3·1운동 100주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국립묘지에 묻힌 친일 반민족·반민주 행위자들의 묘를 옮겨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국가공무원노동조합, 대전민중의힘 등 대전지역 시민·노동단체는 현충일인 6일 국립 대전현충원의 애국지사 묘역을 참배하고 헌화한 뒤 반민족 행위자의 묘 이장을 촉구했다. 이들은 “국립묘지는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희생한 애국지사와 순국선열을 모시는 곳이다. 친일 반민족 행위자와 군사반란 가담자 등 부적절한 안장자의 묘를 국립묘지에서 즉각 이장해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다.
이들은 “우리는 20여년 동안 ‘한번 안장하면 유가족이 원하지 않을 경우 이장할 수 없는’ 국립묘지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정부와 국회는 조속히 국립묘지법을 개정해 국립묘지를 진정한 민족과 민주주의의 성지로 거듭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들은 김창룡, 소준열, 신현준, 김동하, 이형근 등 대전현충원에 안장돼 있는 반민족·반민주 행위자들의 범죄를 공개하고 이들의 유족에게 이장하라고 공개 요구했다.
대통령 산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2009년 발표한 친일 반민족 행위자 1005명 가운데 서울현충원 7명, 대전현충원 4명 등 모두 11명이 국립묘지에 묻혀 있다. 서울현충원에는 일본군 대좌 출신으로 초대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이응준, 독립군을 토벌한 간도특설대 출신인 김백일 제1군단장, 일본군 소좌 출신 신응균과 김홍준, 백낙준, 신태영, 이종찬 등이 묻혀 있다. 대전현충원에는 김석범·백홍석·송석하·신현준이 묻혀 있다. 이들은 친일 반민족 행위에도 불구하고 해방 뒤 처벌받지 않고 군·경찰에서 경력을 쌓아 국립묘지 안장 자격을 갖췄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국립묘지에 묻힌 친일 반민족 행위자는 전체 4389명 가운데 63명에 이른다. 서울현충원에는 만주군 장교 출신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해 만주군 헌병 출신으로 국무총리와 국회의장까지 역임한 정일권, 임충식 육군 대장, 일본군 소좌 출신 채병덕 등 35명이 묻혔다. 대전현충원에도 관동군 헌병 출신인 김창룡 특무부대장을 비롯해 김동하, 이형근, 민복기, 홍병식 등 28명이 안장돼 있다.
한편 유족 동의 없이 안장을 취소하는 내용의 국립묘지법 개정안은 지난해 6월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이 대표 발의했으나 1년째 국회에 계류 중이며, 국립묘지의 친일파 묘 주변에 이들의 범죄행위를 알리는 조형물을 설치하자는 또 다른 국립묘지법 개정안도 발의된 상태다.
홍경표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사무국장은 “미군정의 거부와 이승만 대통령의 방해로 해방 뒤 제1과제였던 친일청산이 실패했다. 법이 조속히 개정돼 안장 뒤에도 반민족 행위, 국가 반란 등 중대 범죄에 관련된 사실이 드러나면 안장을 취소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허태정 대전시장도 이날 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추념식에서 “올해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애국지사와 유가족을 위로하고 후세에 올바른 역사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국립묘지 관련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등 대전지역 시민·노동단체 회원들이 6일 현충일을 맞아 국립 대전현충원에서 국립묘지법 개정과 반민족·반민주 행위자 묘 이장을 촉구하는 시민대회를 열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