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제 대상 도시공원인 천안 일봉산의 민간특례사업 찬반 주민 투표를 하루 앞둔 25일 시민사회·주민들이 투표 참여를 호소하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어머니 26일이 투표하는 날인 거 알고 계시죠? 꼭 투표하셔요.”
25일 오전 8시 충남 천안시 동남구 신방동 성지아파트 앞 새말 네거리 교통섬에선 때아닌 선거운동이 펼쳐졌다. 출마자는 ‘일봉산’, 유권자는 일봉산 주변 지역인 중앙동·봉명동·일봉동·신방동·쌍용1동·청룡동 주민 13만445명이다. 이들은 26일 각 동의 행정복지센터(일봉동은 주민자치센터, 중앙동은 게이트볼장)에서 오전 6시부터 밤 8시까지 일봉산 민간특례 개발사업에 대한 찬·반 투표를 하게 된다.
“알지 알지. 내가 꼭 투표할 거야. 저거 없으면 우리 손주하고 어디로 산책 다니겠어.” 60대 주민이 손을 흔들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구본경 천안아산환경운동연합 간사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또 다른 분도 구 간사에게 “잘 될 거야”라고 격려하고 길을 건넜다. “저분은 이 동네 통장이세요. 뵐 때마다 힘을 보태 주세요.”
선거 유세에 나선 이들은 일봉산 주변 동네 주민 자원봉사자들과 천안지역 시민사회단체 상근자 등이다. 3년여 전부터 시민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일봉산 지키기에 나선 이들은 지난 3일 천안시의회가 일봉산 개발 여론을 묻는 주민투표를 하기로 확정하자 곧바로 ‘일봉산 숲과 민주주의를 지키는 천안민주단체연대회의’(이하 일봉산 지키는 연대회의)를 꾸리고 5일부터 공식선거 운동을 했다.
일봉산 지키는 연대회의는 새말 네거리에 상황실을 설치하고 차량유세단과 시민홍보단을 가동했다. 차량유세단은 방송차량 2대가 하루 2~3바퀴씩 선거구를 순회한다. “민특사업을 막지 못하면 우리 아이들은 평생 마스크를 쓰고 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미세먼지를 저감하고 열섬현상을 줄이는 우리 모두의 숲 ‘일봉산’을 지킵시다.” 간절한 목소리가 장맛비를 뚫고 거리 곳곳에 퍼졌다.
‘일봉산 숲과 민주주의를 지키는 천안민주단체연대회의’ 회원들이 25일 천안 신방동 거리에서 시민에게 민특사업 찬반 투표 참여를 권유하고 있다.
시민홍보단은 출·퇴근 시간대에 아이파크, 비발디 등 주요 아파트 단지 앞 교차로에서 손팻말을 들고 전단을 나눠주며 투표를 독려했다. 또 낮에는 시민 자원봉사자들이 아파트 단지·상가를 돌며 주부·어르신들을 만났다. “일봉산은 아파트 단지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생태계가 살아있어요. 훼손하면 다시는 복원이 불가능할 겁니다. 수백억원을 들여 만든 시청 옆 공원, 도솔광장에 그늘이 있나요? 숨이 턱턱 막히잖아요.” 한 어르신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되물었다. “알지. 그런데 개발 못 하게 되면 투표한 주민들이 업체에 피해 보상책임을 져야 한다는데?”
서상옥 일봉산 지키는 연대회의 공동대책위원장은 “민특사업을 지지하는 이들이 투표를 무산시키려고 피해 보상책임을 주민이 져야 한다는 헛소문을 내고 ‘나쁜 투표’이니 하지 말라는 황당한 펼침막도 내걸었다”며 “주민이 반대하면 일봉산 민특사업은 중단되고, 매입 등 과정을 거쳐 시민의 숲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민의 반응은 뜨겁다. 거리마다 ‘투표하자’, ‘일봉산을 보전하자’, ‘일봉산을 지키자’는 펼침막이 가득하다. ‘투표하지 말자’, ‘나쁜 투표’, ‘우리 가족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습니다’는 등 개발찬성 쪽에서 게시한 펼침막을 압도한다. ‘일봉산 지키는 연대회의’는 “우리는 100여장을 걸었다. 나머지 200여장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제작한 펼침막”이라고 귀띔했다.
26일 민특사업 찬반 주민투표를 앞둔 천안 일봉산 주변 지역 도로변에 투표 참여를 당부하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투표권이 없는 청소년도 일봉산 보전에 한목소리를 냈다. 등굣길에서 만난 김아무개·백아무개(신방중 1)군은 “일봉산은 가족이 나들이하고 배드민턴을 하는 곳이다. 26일이 어떤 투표를 하는 날인지 잘 알고 있다. 어른들이 많이 반대투표를 해 일봉산을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민투표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도 많았다. 한 주민은 “이 동네 안 산다”며 외면했고, 의도적으로 선거운동 현장을 피해 가는 이들도 있어 자원봉사자들이 애를 태우기도 했다.
“유권자 13만445명 가운데 3분의 1인 4만3482명 이상이 투표에 참여해야 유효한 투표로 인정되고 개표가 진행돼 찬반 여론을 가리게 됩니다.” 차수철 일봉산 지키는 연대회의 공동대책위원장은 “지난 20~21일 사전 투표에 4903명(3.76%)이 참여했다. 낮아 보이지만 유효 투표 기준으로 따지면 11%를 웃도는 것”이라며 “내일 3만8579명 이상의 시민이 투표에 참여해 아이들의 삶 속에 온전한 일봉산을 물려주길 소망한다”고 호소했다.
천안/글 사진 송인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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