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코로나19 확산을 차단하려고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를 연장한 가운데 전국에서 다단계 사업설명회가 잇달아, 우려가 커지고 있다. 11일 강원도 춘천에서 열린 다단계업체 설명회. 박수혁 기자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노래방과 주점 등 12개 고위험시설이 문을 닫고 음식점과 카페 등의 영업도 제한되고 있지만, 전국을 순회하며 열려 전파 위험이 더 큰 다단계업체 사업설명회는 별다른 제한 없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방문판매 교육장과 달리 일반 사무실을 빌려 이뤄지는 설명회는 별다른 제한 수단이 없어, 촘촘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1일 오후 2시께 강원 춘천시 효자동 한 사무실. 20여개 의자에 10명가량이 자리에 앉아 기능성 화장품을 파는 다단계업체의 세미나를 듣고 있었다. 전면에 대형 텔레비전이 설치돼 있고, 칠판에는 업체 이름과 ‘유통혁명’, ‘탈모’, ‘다이어트’ 등 단어들이 쓰여 있었다. 업체 쪽은 “춘천에서는 지난주에 이어 오늘이 두번째 강의다. 코로나 시대에 맞게 비대면으로 제품을 판매하는 방법을 알려주려고 개인 사무실을 빌렸다”며 “코로나19 때문에 사람이 많이 모이지 않는다. 확진자가 나오면 우리도 타격이 있어서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킨다”고 말했다. 수강생들은 마스크를 쓰고 명부를 작성한 상태였으며 사무실 입구에 소독제도 놓여 있었다.
현장을 찾은 강원도청 관계자는 업체 쪽에 “코로나19 확산 우려가 있으니 가급적이면 이런 설명회도 자제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으로 점검을 마쳤다. 성수환 강원도 유통소비담당은 “방문판매·직접판매 홍보관은 고위험시설로 지정돼 운영이 중단됐지만, 다단계업체의 지역 순회 설명회는 현행법상 규제할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한겨레>가 입수한 이 업체 이름을 딴 한 단체대화방 내용을 보면, 이달에만 부산, 대구, 대전, 울산, 창원, 원주, 천안, 구미, 강릉, 전주, 제주, 광양, 춘천, 괴산 등 전국 14개 지역에서 월~토요일에 55차례 세미나를 연다고 공지돼 있다. 세미나는 △월요일=창원·울산·원주·천안 △화요일=부산 △수요일=구미·강릉·전주·제주 △목요일=대구 △금요일=광양·춘천·괴산 △토요일=대전 순으로 매주 똑같은 시간에 주기적으로 열리도록 돼 있었다.
한 다단계업체의 9월 전국 사업설명회 일정표. 요일별로 강의 시간과 지역, 강사(지움)가 정리돼 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다단계업계 동향에 밝다는 한 60대는 “다단계업체는 건강보조식품이 가장 많고, 기능성 화장품, 건강용품과 전자화폐, 자동차 판매까지 다양하며 지역 설명회도 수시로 열린다”며 “요즘은 추석 선물용 판촉을 위해 설명회를 강화했다”고 전했다. 그는 “다단계 상위 집단이 대화방을 만들고 지인들을 초대하는 방식으로 운영해 밖에서는 일정을 알기 어렵다. 대화방 참가자들이 지인들을 데리고 품앗이하듯 여러 다단계 설명회에 돌아다닌다”고 말했다. 거리두기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지만, 전국을 도는 영업이 이뤄진다는 설명이다. 일정표를 보면 남아무개 강사는 2일 전주→9일 강릉→11일 광양→21일 천안→28일 원주 5곳을 돌도록 돼 있었고, 주아무개씨와 이아무개, 임아무개씨 등도 3곳 이상 권역을 돌며 강의하도록 했다.
다단계 등 특수판매업체는 교회 다음으로 집단감염을 일으키는 요인으로 손꼽힌다. 지난 6월 불거진 서울 리치웨이발 집단감염은 전국으로 번져 확진자가 200여명에 이르렀고, 최근 논란이 되는 서울의 스마일무한구룹발 확진자도 50명을 넘어섰다. 대전에서도 지난달 25일 동구 인동 한 사무실에서 열린 다단계 건강보조식품 설명회발 감염자가 50명대로 늘었다. 대전은 누적 확진자 336명 가운데 111명(33%)이 특수판매업체와 관련돼 있을 정도다.
위험에도 불구하고 다단계업체 설명회가 계속 이뤄지는 이유는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제한 범위가 지역별로 다르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실내 50인, 야외 100인 이상 모임은 제한한다. 직접판매·방문판매 교육장은 고위험시설로 지정돼 있어 거리두기 1단계부터 금지”라고 밝혔다. 가장 강경한 서울시는 다단계·방문판매 등 특수판매업체에 집합금지 행정명령을 내렸고, 행정명령을 어기거나 등록·신고하지 않고 영업을 한 특수판매업체 29곳을 고발하기도 했다. 대전시와 대구시도 집합금지 행정명령을 내려 설명회 자체를 금지했다.
하지만 집합제한 행정명령을 내린 경남에서는 방역수칙만 준수하면 설명회 개최가 문제가 안 된다. 김태헌 경남도 민생경제계장은 “관련 신고센터를 운영하며 불시 점검을 하고 있다. 도에 등록된 업체를 대상으로 가능한 한 모임을 열지 말고, 한다면 반드시 방역수칙을 지키라고 한다”고 말했다. 전북과 강원 등도 마찬가지다.
김정숙 보건복지부 생활방역팀장은 “거리두기 2단계 관련 행정명령 권한은 지자체에 있다. 집합금지 행정명령을 내린 곳은 다단계 설명회가 위반이고, 집합제한 행정명령을 한 지자체는 방역수칙을 준수하면 다단계 설명회를 허용하면서 혼선이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병진 대전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집행위원장(변호사)은 “특수판매업체의 영업행위 같은 문제는 지방정부 각각의 판단에 따르기보다 정부가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시민의 생명을 지키고 방역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송인걸 박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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