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시 보건진료소 20곳이 문을 닫은 가운데, 도산면 온혜보건진료소 앞이 한산한 모습이다. 안동시 제공
“인자(이제) 차 타고 면 소재지에 있는 보건지소까지 가야지. 불편한데 다른 방법이 있나. 코로나가 빨리 잡혀야 할 텐데….”
16일 경북 안동시 풍천면 광덕리에 사는 정운분(68)씨가 입맛을 다셨다. 이 동네뿐만이 아니다. 안동시 전체 보건진료소 25곳 가운데 20곳이 지난 14일 낮부터 문을 닫았다. 종합병원인 안동병원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해 보건진료소 직원들이 대거 역학조사에 투입됐기 때문이다. ‘리’ 단위에 있는 보건진료소가 문을 닫으면, 해당 마을 주민들은 읍·면 소재지에 있는 보건지소까지 나가야 한다. 정씨는 “가까이 있던 보건진료소가 문을 닫았다고 하니, 급할 때는 어떡하나 싶어 불안하다”고 말했다.
보건진료소는 ‘농어촌 등 보건의료를 위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보통 의사가 아닌 간호사 면허를 가진 보건진료원 1명이 진료 행위를 한다. 읍·면 단위마다 1개씩 설치되는 보건지소보다 더 의료기반이 취약한 곳에 설치하는 최말단 공공보건의료시설인 셈인데, 코로나19 확진자 급증 영향으로 제구실하지 못하는 경우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강원 원주시는 지난 13일부터 지역 보건진료소 8곳 가운데 단강·황둔 보건진료소를 뺀 나머지 6곳 운영을 일시 중단했다. 이곳에서 근무해오던 보건진료원 6명은 방역대응추진단에 투입됐다. 6곳 진료소는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운영이 중단된다.
의사 차출로 보건지소가 의료공백 사태를 겪고 있는 곳도 있다. 경남지역 보건지소에는 공중보건의 164명(치과·한방과 제외)이 근무하는데,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가 진주·거제시와 10개 군 보건지소에서 공중보건의 2명씩 모두 24명을 2주씩 교대로 수도권에 차출하고 있다. 10개 군 보건소도 부족한 의료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관할 보건지소 공중보건의를 일부 차출해 운영하고 있어, 결과적으로 군 지역 보건지소 절반가량은 공중보건의 없이 운영되고 있다. 공중보건의가 차출된 보건지소는 당연히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진료나 처방 등은 불가능하다.
충북지역에서도 보건지소 등에서 근무 중인 공중보건의 18명이 교대로 상급종합병원과 생활치료센터에 파견을 가고, 시·군 단위 보건소에 설치된 선별진료소 업무 지원에도 나가야 하는 바람에 공중보건의들이 요일별로 지소를 돌아다니며 근무하고 있다. 충남지역도 선별진료소 업무에 공중보건의들이 차출돼 보건지소들이 의사 없이 주민들을 맞아야 하는 날이 늘고 있다.
이렇듯 ‘풀뿌리 의료기반’ 공백이 우려되는 상황이지만, 지방자치단체들로서도 뾰족한 방법은 없는 상황이다. 박한석 충북도 보건정책팀장은 “코로나 때문에 지금 보건지소는 코로나 상황 이전에 견줘 정상적 운영이 안 되고 있다. 코로나가 급증하면서 진단검사, 접종, 역학조사 등 이유로 시·군 보건소로 많이 나가기 때문이다. 의료공백이 발생하면 인접 지소 의료진 등이 지원하기도 하지만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최은정 경북도 감염병관리과장은 “코로나19 장기화와 확진자 급증으로 전국적으로 코로나19 대응 인력이 모두 부족하다. 인력도 교체되는 게 아니라 지난해부터 계속 이러고 있으니 모두 한계에 와 있다. 진단검사 민간위탁 얘기도 나오고 있고, 정부도 기간제 유휴 간호사를 지원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정형준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보건진료소가 있는 지역은 농촌지역 중에서도 소득수준이 낮고 교통도 좋지 않아 의사를 구하기 어려운, 의료환경이 정말 열악한 곳이다. 그런 곳에서 의료공백이 누적되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숙련된 의료인력을 돌려막기식으로 생활치료센터나 선별진료소로 보내선 안 된다. 선별진료소 업무는 새로운 사람을 뽑고, 보건소나 보건진료소 보건 업무는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규현 최상원 오윤주 박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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