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 73주기] 김용현·양기씨 부자의 비극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김양기씨가 15일 전남 여수 자택에서 국가폭력 피해 상황을 말하고 있다. 전두환 신군부는 김씨가 보도연맹 사건으로 희생된 아버지의 복수를 하기 위해 간첩활동을 했다는 누명을 씌웠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1950년 7월 여수경찰서 호출 받은뒤
다른 120여명과 함께 총살당해 ‘피고인은 1948년도에 발생한 공산분자들의 여수·순천 반란사건에 가담했다가 검거돼 복역하고 6·25사변 발발 직후 처형된 망부 김용현의 유복자로 출생해 (중략)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고 다짐하면서….’ 35년 전인 1986년 2월 간첩 누명을 쓰고 광주 505보안대의 모진 고문수사를 받던 김양기(71·당시 36)씨는 수사관들이 허위로 작성한 자신의 진술서 내용을 듣고 눈이 번쩍 뜨였다. 아버지의 사망 경위를 알게 됐기 때문이었다. 30대 중반이 되도록 누구도 김씨에게 아버지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말해주지 않았던 터였다. 김씨는 ‘요것들이 내가 어디 가서 암말도 못 하는 것을 알고 엮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때서야 영문도 모른 채 끌려와 왜 43일간 고문을 받아야 했는지, 왜 간첩 누명을 써야 했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어이가 없었죠. 옷도 제대로 못 입은 만신창이 상태에서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았으니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지난 15일 전남 여수시 삼일동에서 만난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 김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김씨는 “그전까지 그저 경찰이던 아버지가 여순사건 때 반란군한테 붙잡혀 죽은 것으로 알았다. 보도연맹으로 돌아가셨으니 ‘난 꼼짝없이 간첩으로 몰리겠구나’ 하고 자포자기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유복자로 태어난 아들은 1986년
간첩 누명 쓰고 신군부에 끌려가
“아버지 원수 갚으려 간첩 활동”
고문당해 허위 진술서 쓰고 7년형 1970년부터 일본을 오가며 선원, 화물차 운전기사로 일했던 김씨는 재일 공작원의 지령을 받아 국내 산업단지 등 정보를 북한에 알려줬다는 혐의(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1987년 12월 징역 7년을 확정받고 5년을 복역한 뒤 1991년 5월 특별가석방으로 풀려났다. 김씨는 2006년 1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에 자신의 간첩조작 사건에 대해, 같은 해 7월에는 아버지 사건에 대해 진상규명을 신청했다. 김씨는 2008년 6월 고문수사 피해자로 인정받았고, 2009년 7월 광주고법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의 아버지도 그해 8월 진화위에서 전남 국민보도연맹 사건 피해자로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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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여순사건에 연루돼 복역하고 1950년 7월 보도연맹 학살 사건 때 희생된 김용현씨. 김양기씨 제공
2009년 재심서 무죄 선고 받고
2020년 아버지 피해 인정받았지만
“아직 드러내지 못한 희생자·유족 많아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김양기씨가 2009년 재심에서 무죄를 받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기록들.김양기씨 제공

일제강점기 일본 유학을 다녀온 뒤 여순 사건과 국민보도연맹 사건에 얽혀 희생당한 김용현씨가 1942년 일본 도쿄 철도학교에서 받은 졸업장. 김양기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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