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군은 내년 12월까지 19억원을 들여 구례의 심장인 봉성산 아래에서 국궁장 봉덕정을 보수하는 공사를 추진 중이다. 현재 봉성산은 길이 205m, 너비 26m로 훼손된 상태다. 김인호 시인 제공
지리산 주맥 끝자락이자 노고단 남쪽 조망점인 봉성산이 불법 훼손되면서 주민 반발을 사고 있다.
26일 구례군과 주민의 말을 종합하면, 구례군은 지리산 자락인 구례읍 봉남리 봉성산(해발 166m) 아래 봉덕정 부근 국궁장(사정)을 3800㎡에서 5300㎡로 확장하는 공사를 하고 있다. 구례군은 내년 12월까지 19억원을 들여 봉덕정 목조 건물을 보수하고, 사로를 3과녁 21사로에서 4과녁 28사로로 확장할 계획이다. 이 공사는 지난달 11일 착공해 공정률 20%에 이르렀다. 공사는 한 해 10여 차례 대회를 치르는 국궁장 사로가 비좁다는 민원을 구례군이 수용하면서 시작됐다.
김경모 군 스포츠산업과장은 “유명 국궁 명소인 봉덕정이 내년이면 활쏘기를 시작한 지 100년을 맞는다”며 “이를 기념해 1인당 사로 너비를 0.7m에서 1m로 넓혀 전국 대회를 유치하려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군은 기존 시설의 ‘경미한’ 확장이라는 이유로 주민 동의를 받지 않았고, 산지 전용 허가와 실시설계 인가를 빠뜨린 채 서둘러 착공하는 등 혼선을 빚었다.
구례군 주민들은 ‘봉성산훼손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최근 읍내에 “불법 훼손, 주민 무시, 안전 불감, 봉성산 훼손을 중단하라”는 펼침막을 걸고 대응에 나섰다. 대책위 관계자는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인가 절차를 건너뛸 만한 시급한 사업이 전혀 아니다”라며 “내용과 절차의 흠결을 규명해 공사를 멈추고 원상을 회복하도록 감사원에 감사 청구도 준비하겠다”고 했다. 대책위에서 활동하는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 모임 지리산 사람들’ 윤주옥 대표도 “주민과 아무런 협의도 없이 공사를 일방적으로 진행한 이유가 무엇인지 밝혀야 한다”며 “산림·경관 훼손과 공원 생태계 파괴를 막기 위해 우선 산림청에 불법 공사 중단을 요구하는 민원을 냈다”고 밝혔다.
현재 산쪽으로 높이 10m, 너비 7m의 절개지가 생겼고, 높이 10m 내외 벚나무와 참나무, 동백 등 나무 수백그루가 잘려나갔다. 정인호(73) 봉남리 이장은 “동네 주민도 모르는 상황에서 구례의 심장을 훼손했다”며 “주민들에겐 큰 산 지리산 못지않게 뒷산 봉성산도 소중하다”고 허탈해했다. 주민 전병선(73)씨도 “이전에도 집 마당에 화살이 떨어지고, 과녁에 따악따악 화살이 꽂히는 소리 때문에 불안했는데, 절개지 옹벽 설치로 산사태까지 걱정하게 됐다”며 “100년 전통을 살리겠다고 수백년 살아온 주민을 못살게 군다”고 하소연했다.
봉덕정은 조선조 구례 관아의 동헌 앞 봉덕루 자리에 설치된 정자다. 1920년대부터 활쏘기 연습장으로 쓰였으나 공간이 비좁아 1933년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새로 세워진 뒤 명맥을 유지해왔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파헤쳐진 봉덕정은 구례군청에서 500m쯤 떨어진 주택지에 맞닿아 있다. 김인호 시인 제공
봉덕정 공사로 이 일대에 울창했던 벚나무와 참나무 등 나무 수백그루가 잘려나갔다. 김인호 시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