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은 1948년 10월19일 여수읍 신월리에 주둔했던 14연대 군인들이 제주4·3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진압군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전남 동부권과 지리산 일대의 민간인 등 1만여명이 숨진 현대사의 비극이다.
내년 1월 여순사건 피해자 신고를 앞두고 이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접수된 여순사건 822건을 누가 조사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27일 진실화해위와 여순유족회 등의 말을 종합하면, 여순사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시행되는 내년 1월21일부터 여순사건 희생자와 행방불명자·수형자 등의 피해신고가 자치단체와 재외공관에서 이뤄지게 된다. 하지만 2020년부터 진실화해위에 들어온 여순사건 관련 신청이 이미 800건을 넘어 사전 정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진실화해위는 2005~2010년 활동한 1기 때 여순사건과 관련해 730건 1237명의 희생을 결정했다. 2020년 출범한 2기 때 여순사건 관련 822건을 신청받아 이 가운데 231건의 조사를 개시했다. 진실화해위는 여순사건 관련 사건은 곧 출범할 여순사건 진상규명위원회(여순사건위)에 보낸다는 원칙을 세웠다. 하지만 여순사건위의 조사기구 구성이 늦어지고 전문인력 확보가 어려우면 조사가 더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때문에 내년 1월 여순사건 유족의 균등한 피해 구제와 시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청회를 열기로 했다. 최근에는 순천과 여수를 찾아 유족들의 의견을 들었다. 정근식 진실화해위원장은 “일괄 이관이 원칙이지만, 유족회나 신청인이 요구하면 (직접) 조사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여순사건의 정의가 다른 점도 고려해야 할 대목이다. 여순사건의 범위를 두고 1기 진실화해위는 “1948년 10월19일~1950년 6월25일 여수·순천·구례·보성·고흥·광양 등지에서 발생한 군경토벌 등에 의한 피해”로 봤다. 여순특별법은 “1948년 10월19일~1955년 4월1일(지리산 입산금지 해제) 여수·순천을 비롯해 전남·북, 경남 일부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이라고 확장했다. 일부에선 제대로 갈래를 타지 않을 경우 정부의 위원회 2곳에서 같은 사건에 대해 조사 결과와 보고서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유족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한축은 제주4·3의 경우처럼 특별법에 따라 진상규명에서 배·보상까지 일괄적으로 추진하기를 바란다. 한축은 증언자가 줄어들어 진실규명에 시간이 부족한 만큼 진실화해위에서 조사를 개시했으면 그대로 진행하기를 원한다.
이영일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은 “법률에 관련 규정이 없는 게 현실”이라며 “여순사건위가 발족하면 진실화해위와 업무협약을 통해 일괄 이관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안관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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