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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부상뒤 한 많은 40년…‘애꾸눈 광대’는 웃음으로 넘기지요”

등록 2022-06-07 18:56수정 2022-06-08 02:33

[짬] 5·18부상자회 이지현 초대회장

지난해 5월 광대 복장을 한 채 전두환 만행을 규탄하고 있는 이지현 5·18부상자회 초대회장.
지난해 5월 광대 복장을 한 채 전두환 만행을 규탄하고 있는 이지현 5·18부상자회 초대회장.

전남 화순 출신으로 1980년 서울에서 회사원 생활을 했던 이지현(71)씨는 5월18일 광주에서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닷새 뒤 광주에 도착했다. 옛 전남도청 앞 상무관(경찰 연무장)에 놓인 시민 주검을 본 이씨는 밤까지 광주 곳곳을 누비다가 광주 서구 광천동 검문소에서 계엄군에게 붙들려 구타를 당한 뒤 왼쪽 눈을 잃었다. 당시 병원에서 깬 이씨는 실명을 직감하고 의사에게 “눈을 빼서 전두환에게 갖다 주어라”고 말하며 민주화 투쟁의 길로 들어섰다.

1980∼90년대에는 투쟁으로, 2000년대부터는 예술로서 광주 항쟁을 알리고 있는 이지현  5·18부상자회 초대회장이 40년 투쟁기를 담은 산문집 <어느 봄날의 약속>을 펴냈다.

본명보다는 ‘애꾸눈 광대’라는 별칭이 더 유명한 이씨는 “그동안 틈틈이 쓴 글을 추려 책으로 출간했다. 더 늦기 전에 동지들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고 지난달 24일 말했다.

1985년 4월 서울 동교동에서 이지현씨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광주 참상을 설명하고 있다.
1985년 4월 서울 동교동에서 이지현씨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광주 참상을 설명하고 있다.

책에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았던 이씨가 5·18에 참여했다가 왼쪽 눈을 잃은 뒤 진상규명과 민주화 투쟁에 나서며 만났던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4부 68개 단편 글로 구성된 책 첫머리는 이씨가 기획한 연극의 실제 주인공인 ‘비운의 전도사 문용동’에 대한 이야기다. 5·18 당시 호남신학대 4학년생 문용동은 시민군이 계엄군의 공습에 대비해 옛 전남도청 지하실에 쌓아놨던 폭약을 해체했다. 대규모 참상을 막기 위한 목적이었다. 도청 진압작전 때 계엄군의 총탄을 맞고 숨진 문용동을 신군부는 ‘프락치’로 둔갑시켰다. 이씨는 “광주시민들도 오랫동안 문용동을 오해했다. 이제는 억울함이 밝혀지고 광주의 진실이 드러나야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서울 머물다 광주 소식에 항쟁 참여
군 폭력에 한쪽 눈 잃고 투쟁 앞장
문화 예술로 광주 알리자며 시작한
‘애꾸눈 광대’ 공연도 200회 넘겨

40년 투쟁기 ‘어느 봄날의 약속’ 내
프락치 오인 문용동씨 얘기 등 담아

또 ‘고아 출신 구두닦이 시민군 정병균’ ‘송암동 양민학살과 김군’ ‘김영철·김순자와 5·18둥이 김연우’ ‘무명 시민군 이춘기’ ‘1985년 8·15에 분신한 노동열사 홍기일’ 등 주목받지 못한 항쟁 참여자뿐 아니라 고 김대중, 김영삼, 노무현, 김근태 등 정치인과의 일화도 소개한다.

1983년 5월 이지현씨가 서울대병원에서 단식농성 중인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1983년 5월 이지현씨가 서울대병원에서 단식농성 중인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씨는 1983년 김영삼 신민당 총재를 만났다는 이유로 안기부에 끌려갔고 1986년 전두환 광주 방문을 항의하다 구속되는 등 숱한 고초를 겪었지만 가장 기막혀 하는 사건은 5·18묘지 이장 공작이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둔 전두환 정권은 1983년 5·18묘지 성역화 방해 작업에 나섰다. 유족에게 접근해 광주 망월동 5·18 구묘역에서 묘를 이장하면 이장비 30만원과 위로금 1000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집 두 채를 살 수 있는 거액이었다. 유족들은 찬성파와 반대파로 갈라졌고 지역 언론사 사주, 기업인, 공무원 등은 갈등을 부추겼다.

이씨는 “유족과 결혼했던 여동생도 남편과 이 문제로 다투다 세상을 떠났다. 당시 묘지 이장 공작에 앞장섰던 전남지역개발협의회는 현재 광주전남발전협의회로 이름을 바꿔 운영하고 있다. 누이동생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전두환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89년 2월 5·18광주민중혁명 부상자동지회 결성식 모습.
1989년 2월 5·18광주민중혁명 부상자동지회 결성식 모습.

이씨는 5·18부상자동지회 초대회장, 민주쟁취 국민운동본부 화순공동의장, 5·18공동대책위원회 대변인 등을 맡아 쉬지 않고 투쟁에 앞장섰지만 진실은 묻혀 있고 학살자는 편히 지내는 현실에 화가 났다. 2010년 5월 5·18 30주년을 맞아 문화 예술로 광주를 알리자는 생각이 들었다. 고교 야구 응원단장, 악극단 경험을 살려 광대 복장을 했다. ‘애꾸눈 광대’의 탄생이었다. 1인극으로 시작한 공연은 15인극으로 규모가 커졌고 지난해 6월 200회를 넘겼다. 2015년 2월 공연 준비 중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끝까지 공연을 이어가다 임종을 지키지 못한 불효를 저지르기도 했다.

애꾸눈 광대의 공연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이씨는 지난달 서울에 이어 이달 6∼16일, 7월 12∼14일 광주아트홀에서 공연하고 광주·전남 지역 학교 방문 공연도 계획하고 있다.

이씨는 “애꾸눈 광대 공연은 광주시민의 응원과 눈물로 버텨왔다. 내가 떠난 이후에도 ‘오월 광주’를 상징하는 연극으로 남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지현 5·18부상자회 초대회장의 40년 투쟁기를 담은 산문집 &lt;어느 봄날의 약속&gt; 표지.
이지현 5·18부상자회 초대회장의 40년 투쟁기를 담은 산문집 <어느 봄날의 약속> 표지.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사진 이지현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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