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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서 키운 ‘MZ세대 창업농’의 꿈…“농사로 사장 될래요”

등록 2022-08-22 09:00수정 2022-08-26 02:43

정부 지원 5개교서 양성한
20대 창업농부들의 희망가
이현 전남 곡성군 겸면 로와농장 대표가 17일 시설 하우스 안에서 멜론 재배 과정을 설명하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정대하 기자
이현 전남 곡성군 겸면 로와농장 대표가 17일 시설 하우스 안에서 멜론 재배 과정을 설명하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정대하 기자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니, 진짜 재밌어요. 숙성 시기만 잘 맞추면 당도도 잘 나올 거예요.”

20대 여자 농사꾼이 하우스 안 멜론들을 가리키며 활짝 웃었다. 전남 곡성군 겸면 평장리 로와농장 대표 이현(27)씨다. 17일 농장에서 만난 그는 “9월 말쯤 당도가 15브릭스(당도 측정 단위) 넘게 나오면 딸 생각”이라고 했다. 661㎡(200평) 규모의 시설 하우스 1동은 창업농부의 꿈을 키우는 희망 공간이다. 2020년 8월엔 호우로 시설 하우스가 물에 잠기는 피해도 겪었다. “허망했지만” 툴툴 털고 일어나 지난해 12월 말 곡성군과 농어촌공사에 토지·하우스 1년 임대료 28만원을 내고 멜론 농사를 시작했다. 이씨는 무기 양분을 물에 녹여 배양액을 직접 만들고, ‘레일’을 타고 이동하며 ‘배지’에 심어진 멜론을 직접 딴다. 그는 “중간상을 통해 ‘밭떼기’를 하지 않고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소비자와 직거래를 한다. 바로바로 반응이 오는 게 신기하다”고 말했다.

전남 곡성군 겸면 로와농장의 시설 하우스 안 상태를 알려주는 스마트팜 시스템 화면. 정대하 기자
전남 곡성군 겸면 로와농장의 시설 하우스 안 상태를 알려주는 스마트팜 시스템 화면. 정대하 기자

소멸지역으로 들어가 창농
이씨는 결혼 뒤에도 곡성에 정착해 살 생각이다. 최근엔 곡성군 입면 만수리에 있는 9917㎡(3천평) 규모의 과수원도 매입했다. 지금은 평탄화 작업이 한창이다. 토마토·멜론 등을 재배할 ‘스마트팜’ 시설을 짓기 위해서다. 전남도와 곡성군에서 지원받은 보조금 3억원에, 부모에게 빌린 돈, 은행 대출금을 탈탈 털어넣었다. 이씨는 “얼마 전 농장 설계 도면이 나와 연말까지 공사를 끝낼 예정”이라며 “마을 어르신들이 ‘젊은 사람이 우리 마을에 들어와 농사짓는다니 좋다’고들 하신다”고 말했다. 곡성군은 소멸위험지역 중에서 소멸위험 진입 단계인 0.5 이하 지역으로 분류된 곳이다.

이씨는 전남대 원예학과 재학 당시 대학이 운영하는 스마트영농창업특성화사업단의 창업교육과정을 이수했다. 농림축산식품부 산하기관인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농정원)은 2016년 전국 5개 대학 ‘영농창업특성화사업단’(이하 창업사업단)을 선정해 원예·축산 분야 창업인력을 양성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전남대, 전북대, 경북대, 충남대, 연암대 5개 대학은 해마다 20~30명의 영농창업특성화대학(창업교육) 신입생을 모집한다.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807명이 창업교육 이수자로 선발됐다. 이들은 기존 농대 전공과목 외에 창업교육, 현장실습 등 40여 학점을 별도로 이수하고, 국내외 연수 기회도 얻는다. 5개 대학 창업사업단엔 올해까지 각각 55억원이 투입됐다. 교육생들의 이수율은 99.0%이며, 2020년부터 지금까지 256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고 한다. 이씨는 “방학 때 창업사업단 지원으로 두달간 대관령 딸기 농장에 살면서 실습을 했다. 창업사업단의 도움으로 영농 창업의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충남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새바람 농원’ 대표 백승준씨. 백승준씨 제공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꿈을 갖게 해준 농업
충남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새바람 농원’ 대표 백승준(25)씨는 애초 농부가 될 생각이 없었다. 별다른 꿈이 없었던 그는 대전에서 꽃집을 하는 부모의 권유로 2016년 충남대 원예학과에 입학했다. 친구 따라 창업사업단 교육과정을 신청했던 그는 기계를 다루는 것이 서툴러 고생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백씨는 “농업으로 성공하신 멘토 경영인들을 만나면서 ‘아, 농사로 사장이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졸업하기 전 아버지 고향에서 노지와 시설 하우스를 매입해 거봉 포도 농사(5620㎡)에 뛰어든 것도 이러한 자신감 때문이었다.

지난달 말 수확을 시작했지만, 공판장에 내놓지 않았다. 당도는 뒤지지 않지만, 주변 ‘거봉 마이스터’들의 포도에 견줘 모양이 예쁘게 나오질 않아서였다. “대전 작은 상점에 ‘청년이 재배한 포도’라는 팻말을 적어놓고 직접 팔고 있어요. 대전에선 거봉보다 캠벨 농사를 많이 하거든요. 소비자들이 ‘어? 맛있네!’ 하며 사주시면 피로가 싹 가십니다.” 지난해 3천만원의 매출을 올린 그는 “통장에 돈이 들어오니까 땀 흘린 보상을 받은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농장에 컨테이너(6.6㎡·2평)를 두고 살지만, 의외로 농사를 할 만해요. 다른 작물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땅은 공을 들인 만큼 열매가 맺더라고요. 꿈이 생긴 거지요.”

경북 청송군 현동면 인지리 ‘사과컴퍼니’ 대표 송원식씨가 지난해 사과 과수원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송원식씨 제공
경북 청송군 현동면 인지리 ‘사과컴퍼니’ 대표 송원식씨가 지난해 사과 과수원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송원식씨 제공

경북 청송군 현동면 인지리 ‘사과컴퍼니’ 대표 송원식(28)씨는 서울 출신으로 ‘후계농업경영인 산업기능요원’으로 군 대체 복무(24개월) 중이다. “중학교 때 텔레비전에서 ‘미래는 식량전쟁이다’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농업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어요.” 그는 경북대 농생대 원예과학과를 졸업했다. 6611㎡(2천평) 규모의 사과 과수원을 매입한 뒤 일하기 편하도록 1400그루나 되는 사과나무를 가지가 2개로 뻗는 ‘이축형’으로 바꿨다. “마을에서 집을 빌려 혼자 생활하고 있습니다. 답답할 땐 대구나 안동으로 나가 농업경영인 친구들을 만나요. 과수 농사는 내가 일을 미리 하면 조정할 수 있어요. 집중할 때 집중하고 쉴 땐 쉴 수 있어 좋습니다.”

과학 영농과 워라밸 추구하는 신세대
‘과학 영농’에 도전하는 청년도 있다. 충남 홍성군 홍동면 홍원리 ‘온누리2목장’ 대표 조현희(25)씨는 후계농업경영인 정책자금 3억원 등을 투자해 한우와 육우 100마리를 키우고 있다. 2018년 연암대 축산과에 입학해 창업사업단 교육과정을 이수한 그는 “축산 분야가 어렸을 적부터 봐온 일이라 재미도 있고, 의무감도 있다”고 했다. 온누리2목장은 부모가 운영하는 온누리목장에서 이름을 가져왔지만, 2020년 7월 2314㎡(700평) 규모의 축사를 매입해 경영 독립을 이뤘다.

충남 홍성군 홍동면 새누리2 목장 대표 조현희씨가 송아지를 안고 웃고 있다. 조현희씨 제공
충남 홍성군 홍동면 새누리2 목장 대표 조현희씨가 송아지를 안고 웃고 있다. 조현희씨 제공

수정란을 통해 한우를 생산하고 일주일 정도 된 육우 송아지를 낙농가에서 사들여 두달 반 정도 키워 판매하는 게 주요 업무다. 그는 “암컷 젖소에게 한우 수정란을 넣어 한우 송아지를 생산한다. 대리모인 젖소의 자궁을 빌려 생산한 새끼는 한우 혈통으로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조씨 역시 후계농업경영인으로 군 대체 복무 중이다. 축산업 외에 빌린 땅과 자기 소유 땅 등 모두 4만9587㎡(1만5천평) 땅에서 사료 작물을 키우고, 벼농사(4959㎡)를 지어 연 2억5천만원의 매출을 올린다. “연암대 영농창업사업단에서 여러가지 농촌 관련 정보를 얻은 게 큰 도움이 됐어요. 저를 걱정하던 친구들이 이젠 저를 부러워해요.”

경기도에서 나고 자란 복진욱씨는 일주일에 하루는 아메리칸 바이크를 즐기는 신세대 농부다. 복진욱씨 제공
경기도에서 나고 자란 복진욱씨는 일주일에 하루는 아메리칸 바이크를 즐기는 신세대 농부다. 복진욱씨 제공

청년 창업농들은 워라밸(work-life balance·일과 생활의 균형)을 중시한다. 경기도에서 나고 자란 복진욱(22)씨는 일주일에 하루는 아메리칸 바이크를 즐긴다. 2021년 전북 진안으로 귀촌한 아버지(52)와 함께 ‘복실토실’이라는 스마트팜(6612㎡·2천평)을 운영하고 있다. 고교 재학 때 로봇공학에 끌렸던 그는 전북대 농기계학과에 입학해 원예학을 복수 전공하면서 진로가 바뀌었다. 전북대 영농창업특성화사업단 창업교육과정을 이수하며 딸기 마이스터 등 ‘멘토’를 만나 농업에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복씨는 “스마트팜 프로그램을 통해 온실 안 습도·광량 등을 조절하며 토마토의 생장 변화를 관찰하는 게 재미있다”고 했다.

전북 진안으로 아버지와 함께 귀촌해 스마트팜을 운영하는 복진욱씨는 일주일에 하루 아메리칸 바이크를 즐긴다. 복진욱씨 제공
전북 진안으로 아버지와 함께 귀촌해 스마트팜을 운영하는 복진욱씨는 일주일에 하루 아메리칸 바이크를 즐긴다. 복진욱씨 제공

소멸위험 농촌 활력소
청년 창업농은 농촌 살리기의 활력소 구실도 한다. 전국 시·군·구 중 지방소멸 위험지역은 2013년 75곳에서 지난해 108곳으로 늘었다. 한태호 전남대 영농창업사업단장(원예학과 교수)은 “은퇴 후 귀촌한 분들에 견줘 청년 창농인들은 농촌에 대한 사명감이 남다르다. ‘과학 영농’과 새로운 마케팅 기법으로 워라밸을 즐기는 새로운 농사의 문화를 만들고 있다”며 “정부가 대학의 영농 창업교육을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농정원은 5개 대학의 성과를 매년 평가하고 이를 근거로 5년 단위로 지원 여부를 결정한다. 농정원 관계자는 “올해 선정 대학을 2개 더 늘리려고 예산을 신청해둔 상태”라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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