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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재료비 지출 줄고 학생도 줄고…친환경 농가 ‘깊어가는 시름’

등록 2023-02-22 09:00수정 2023-02-22 09:22

전남의 한 친환경농업단지에서 친환경 농법의 하나로 오리를 논에 넣고 있다. 전남도 제공
전남의 한 친환경농업단지에서 친환경 농법의 하나로 오리를 논에 넣고 있다. 전남도 제공

“농가 11곳이 논 728㏊에 농사를 지었죠. 수확을 마치면 800㎏짜리 쌀가마를 6단으로 올려 창고 천장에 닿을 만큼 쌓아놓을 정도였죠. 다 옛날얘기입니다.”

15일 전남 무안군 몽탄면 내리에서 만난 장기광(72) 꿈여울친환경영농조합법인 대표는 495㎡(150평) 규모 저온창고 2개 동을 바라보며 사람들로 북적거렸던 20여년 전 풍경을 떠올렸다. 장 대표는 “요즘은 쌀가마 1단도 다 못 채운다. 농가들은 다 떠났고 가족들로만 공장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1999년부터 친환경 농업에 뛰어들었다. 2005년에 저온창고와 도정공장을 지은 뒤 광주·전남 학교급식 납품용 유기농 쌀을 생산했다. 사업은 계속 확장해 2011년 서울 도봉구를 시작으로 2015년 영등포·노원구의 중·고등학교와 전문대 등 60여개 학교에 쌀을 납품했다.

하지만 2019년에 정점을 찍은 뒤 사업은 휘청이기 시작했다. 늘어나는 생산비에 견줘 수익이 따라오지 못한 탓에 참여 농가가 하나둘 떠나갔고 급기야 배송직원 채용도 쉽지 않은 상황까지 내몰렸다. 결국 장 대표는 서울 지역 납품을 포기하고, 경작지도 50㏊로 대폭 줄였다. 현재 공급처는 무안 지역 내 학교뿐이다. 그는 “요새는 물가가 올라 사람들이 식재료비 지출을 줄여버리는 통에 판매가 더 어렵다. 유기농에 도전하려는 농가 자체가 드물다”고 말했다.

15일 전남 무안군 몽탄면 내리에서 꿈여울친환경영농조합법인을 운영하는 장기광 대표가 저온창고에 쌓인 유기농 벼를 설명하고 있다. 김용희 기자
15일 전남 무안군 몽탄면 내리에서 꿈여울친환경영농조합법인을 운영하는 장기광 대표가 저온창고에 쌓인 유기농 벼를 설명하고 있다. 김용희 기자

유기농의 위기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통계청과 전남도 자료를 보면, 농가 수와 유기농 농지 면적 감소세가 뚜렷하다. 2020년 기준 친환경농산물 인증을 받은 농가 수는 5만9249호에 이르렀으나 두해 연속 줄어 지난해엔 5만632호에 그쳤다. 같은 기간 유기농 농지 면적도 8만1826㏊에서 6만9815㏊로, 14.7% 줄었다. 다른 지역에 견줘 유기농이 활성화된 탓에 전남의 감소폭은 더 크다. 2020년 대비 2022년 농가 수와 농지 면적의 감소율은 각각 21.0%, 21.4%에 이른다. 유기농가 5곳 중 한곳이 불과 2년 새 사라진 셈이다.

유장수(53) 전남친환경농업협회 회장은 “은퇴농도 있지만 친환경농산물 대부분이 학교급식으로 공급되는 상황에서 유통비를 따져보면 호남이 경기도보다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유기농법은 생산비는 많이 들지만 수확량은 적고 잔류농약 검사에서 조금이라도 화학성분이 검출되면 범법자 취급을 당하는 탓에 친환경 농가가 점점 줄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 수 감소와 함께 정부와 서울시 등의 정책 변화는 친환경 농가의 시름을 더욱 깊게 한다. 한 예로 정부는 그간 시범사업으로 추진해온 ‘임산부 친환경농산물 꾸러미 지원사업’과 ‘초등돌봄교실 과일 간식 지원사업’의 사업비를 올해 예산에 한 푼도 반영하지 않았다. 서울시도 각 자치구와 전국 기초자치단체가 일대일 협약을 맺어 운영했던 ‘도농 상생 공공급식’ 체계를 일괄 구매 계약 방식으로 바꿀 참이다. 이무진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 정책위원장은 “친환경농산물 소비의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서울시의 공공급식이 일괄 계약 체계로 바뀌면 중간 유통상이 끼어들어 농가 이익은 줄어들 여지가 크다”고 우려했다.

전문가와 친환경 농가에선 유기농의 친환경성을 염두에 두고 관련 지원 사업을 확대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영기 한국친환경농업협회 교육국장은 “임산부 친환경농산물 꾸러미 사업이나 친환경 급식은 국민 면역력을 높여 의료비를 절감하는 효과가 있다”며 “매년 인증 취소가 3천여건에 이르는데 친환경농어업의 기준을 국제식품규격위원회 기준으로 맞춰 농사 이력으로 평가하는 방식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친환경 인증 면적 늘리기에 초점을 맞춘 정부의 정책도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정부는 2025년까지 친환경농업 인증 면적 비율을 현재보다 약 두 배인 10%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이런 목표 아래 정부는 친환경농업 집적지구 조성을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다. 장기광 대표는 “간척지 등 넓은 곳에선 친환경단지를 조성할 수 있지만 무안같이 농지들이 흩어져 있는 곳에서는 쉽지 않다”며 “일반 논이 옆에 있으면 화학비료가 바람에 날려올 수도 있어 충분한 완충지대를 둬야 해 그만큼 친환경농지가 줄어들게 된다”고 말했다.

지난 2일 한국친환경농업협회 등 농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국회 본관 앞에서 집회를 열어 친환경 먹거리 관련 예산을 반영해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한국친환경농업협회
지난 2일 한국친환경농업협회 등 농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국회 본관 앞에서 집회를 열어 친환경 먹거리 관련 예산을 반영해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한국친환경농업협회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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