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선(시인, 제주4·3연구소장)
죄라면
좋은 세상 꿈꾸며 속솜하지 않던 죄, 맞습니다
죄명도 기록도 모른 사람들,
풀잎처럼 이 산천 저 산천 이송되었습니다
법 아닌 법 앞에서 당신은 귀환하지 못했습니다
한 방에 사라졌습니다
법 아닌 법 앞에서 기억합니까
산이 바다에 이르듯
달이 별에게 이르듯
아가야 곧 다녀오마
마지막 숟가락 마지막 목소리 펄럭이던
바람길 바닷길 떠나서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기억합니까
이 눌 저 눌 재속에서 몸부림치던
감자알 같던 허공의 사람들을 기억합니까
봄날에도 겨울처럼 떨며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이름 없는 어린 눈동자들을
팡팡 몰아치던 눈보라에 잡은 손 흩어지던 기억을
온 섬이 상주 없는 곡소리
상주가 될 아이들이 조문하는 섬
발굴하지 못한 뼈들의 섬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부르지 못한 등뼈 휘어진 풀씨들
흐린 얼굴들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기쁘다는 말 몰랐습니다.
당신의 아이가 당신 목숨 갑절도 더 넘길 때까지
슬픔도 하도 슬프면 눈물마저 숨는 법
누구는 환호할 땐 환호해야 마땅한 법이라지만
솟구치는 열광은 먼 바다에 흘렸다지요
행복하면 안 되는 법인 줄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법조차 몰랐습니다
돌아서는 그 눈빛을 몰랐습니다 이 섬이 돌아서서 울려 합니다 울지 마세요
죄라면 우는 법 푸르게 웃는 법 알았던 죄
울음에도 색깔이 있던가요
사납게 찢어지던 더러운 폭포 소리, 소리들
와랑와랑 밀려오던 미친 풍경들
대체 아름다운 것은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까
이 섬이 하는 말
일생 기분이 안 났습니다 누구나 당연한 건 당연하다지만 당연하지 않았습니다
홀로 핀 동백이 홀로 질 때까지
꽃봄은 영영 타버린 줄 알았습니다 누구나 그러할 때 그러면 안 되는,
안 되는 게 법인 줄 알았습니다
서로 서로 사는 법 알았습니다 한숟가락 남겨라
남겨야 옆집으로 넘겨준단다
그래서 살았습니다 터질 땐 터져야 하는 법
기쁠 땐 기쁨하라 흔들리며 소송합니다 아침에 본 사람 저녁에 안 보이던,
사람씨 풀씨마저 안 보이던 시절
죄 없이 죄가 된, 법 아닌 법 앞의 사람들
모욕도 수치도 속수무책 법 아닌 법 앞에서
눈도 입도 다물던 사람들, 이제 한번
묻습니다 법 앞에서 거기 꽃 피었습니까 여기 꽃 피젠 헴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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