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공공성연대가 26일 국민연금공단 부산본부 6층 교육실에서 오거돈 부산시장 취임 1주년 대토론회를 열고 있다. 김광수 기자
부산은 1995년 시민의 직접 투표로 부산시장을 선출하는 민선시대가 시작되고 자유한국당 계열 정당의 후보들이 부산시장 선거에서 모두 당선됐다. 그런데 지난해 6월 민선 7기 지방선거에서 대이변이 일어났다. 55.2%의 오거돈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37.1%의 서병수 자유한국당 후보를 18.1%포인트 차이로 낙승한 것이다. 오 후보는 변화를 바라는 시민들의 높은 기대감 속에 지난해 7월2일 시장 도전 4수 만에 350만명의 부산시를 이끄는 수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취임사에서 “동북아 해양수도 부산을 건설하고, 시민이 행복한 도시를 만들며, 시민과 소통하는 시장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오 시장의 취임 1주년을 맞아 부산시가 26일 민선 7기 1년 동안 이룬 10가지 성과를 발표했다. 부산시가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2030년 세계등록엑스포 유치사업이 국가사업으로 확정되고 한국과 동남아시아 10개국 정상회담인 한-아세안특별정상회의의 부산 개최(11월25~26일)를 첫째로 꼽았다.
24시간 운항이 되는 동남권 관문공항을 만들 분수령이 될 김해신공항의 추진 과정 검증작업을 국무총리실에서 맡기로 한 것과 부산의 균형 발전을 위해 추진 중인 부산대개조사업을 2~3번째 성과로 꼽았다.
부산시는 각종 경제지표도 개선되고 있는 것을 4번째 성과로 꼽았다. 고용률이 지난 지방정부와 같이 여전히 전국 평균 이하를 보이지만 지난달 56.6%로 최근 2년 이내 가장 높았고 정규직이 1.9% 증가해 7개 특·광역시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15년 동안의 지역 갈등 때문에 표류했던 부산구치소를 도심 외곽인 부산 강서구로 옮겨서 부산교도소까지 함께 새로 짓는 양해각서를 법무부와 체결하고 올해 국비를 전년도에 견줘 6조원 이상이나 확보한 것은 5~6번째로 꼽혔다.
간선급행버스(BRT) 계속 추진 여부를 시민 배심원제를 통해 결정하고 모든 어린이집을 저녁 7시까지 개방하는 보육종합대책, 전두환 정권 때 노숙자 등을 불법 감금했던 형제복지원 인권유린사건 진상규명 피해신고센터 설립과 피해자 지원조례 제정을 7~9번째 성과로 꼽았다. 개고기 판매업체들이 밀집한 북구 구포 가축시장을 주차장과 휴식공간으로 만들기로 한 것은 마지막 10번째 성과였다.
부산시가 지난 1년 동안 많은 일을 했다고 스스로 평가했지만 외부 평가는 다르다. 부산·경남의 민영방송 케이엔앤(KNN)이 민선 7기 1년을 맞아 여론조사전문기관 폴리컴에 맡겨 지난달 25~26일 19살 이상 부산시민 802명을 대상으로 벌인 여론조사에선 ‘잘하고 있다’는 긍정평가는 30.6%에 그쳤다. 민주당의 정당지지도 32.3%와 문재인 대통령의 업무수행 지지도 39.2%보다 낮았다. 이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을 참고하면 된다.
오 시장의 우군이라 할 수 있는 진보·개혁성향의 시민사회진영도 부정 의견이 더 많다. 11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부산시민운동단체연대가 교수·법조인 등 전문가 70명과 회원 95명 등 165명을 대상으로 7~20일 벌인 설문조사에선 ‘이전 시장보다 시정이 발전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10점 만점에 5점대를 부여했다.
지난 1년 시정의 문제점을 순위별로 꼽아달라는 질문에 교수 등 전문가들은 ‘정무라인 인사 의존의 시정 운영’(20%)을 1순위로 꼽았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오 시장이 스스로 일 처리를 하지 않고 선거 캠프에서 데려온 사람들에게 너무 의존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시민단체회원들은 ‘청년일자리 정책이 설득력이 없다’(22.1%)를 첫번째 시정 문제로 꼽았다.
지난 1년 동안 부산시가 가장 잘한 시정에 대해선 전문가들은 부울경 남해안 상생협약과 원전해체연구소 부산 유치를 첫번째로 꼽았다. 시민단체회원들은 부산시와 영화계가 심각한 갈등을 계속했던 부산국제영화제를 정상화한 것을 가장 잘했다고 평가했다.
오거돈 시장은 변화를 바라는 시민들의 높은 기대감 속에 23년 만인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당선됐다. 연합뉴스
부산시가 24시간 안전한 동남권 관문공항 건설을 위해 역량을 집결하고 있는 것에 대해선 전문가들은 세번째 잘한 시정으로 꼽았지만 시민단체회원들은 3.2%만 잘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가덕도공항을 유치하려는 부산시의 노력이 시민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26일 19개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부산공공성연대가 주최한 오거돈 부산시장 취임 1주년 평가 대토론회에서도 비판이 주류였다. 개발 위주의 이전 시정과 차별성이 없는 등 분명한 시정 철학이 부재해 시민들이 변화를 실감하지 못한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었다.
발제자인 진시원 부산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는 “오 시장의 정치적 포지션은 진보나 민주개혁이 아니라 합리적 보수 성향에 가까운 중도 개혁성향이어서 진보적인 시민은 물론이고 민주개혁적인 시민들의 성원과 지지도를 얻기 힘든 상황이다”고 진단했다. 또 그는 “최근 고용률과 실업률이 개선되고 있지만 그리 좋다고 인식하는 시민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시의회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부산시는 그리 변한 게 없다는 실망과 체념 섞인 시민들의 평가가 더 많다. 오 시장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파란색이 아니라 노란색”이라고 덧붙였다.
시민사회진영과의 협치에 대한 아쉬움도 나왔다. 양미숙 부산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비아르티 지속 추진 여부를 공론화위원회를 통해서 결정하는 등 시민참여를 시도했지만 공론화가 기대됐던 부산 북항 오페라하우스를 정무적 라인을 통해 계속 추진을 결정한 것은 유감스럽다. 시민참여와 협치 정책은 아직 미흡하고 부족하다. 권위와 특권을 과감히 내려놓은 지방정권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오 시장의 남은 3년에 대한 기대감은 여전했다. 부산시민운동단체연대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오 시장의 임기 동안 부산발전 성과를 기대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5.29~5.37점을 줬다. 5점대이기는 하지만 4점대와 5점대 초반에 그친 다른 항목에 견줘 상대적으로 높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에서 벌인 촛불시위 뒤 탄생한 지방정권이어서 잘해야 한다는 바람이 반영된 것이다.
오 시장과 내년 국회의원선거(총선)의 함수관계를 예측하는 시각은 엇갈린다. 부산의 지역구 국회의원 18명 가운데 6명이 민주당인데 6명 수성도 힘들 것이라는 전망과 민주당의 선전을 기대하는 시각이 혼재한다.
긍정 시각은 민주당 지지도와 문재인 대통령 지지도가 오 시장보다 높다는 것에 근거한다. 진 교수는 “부산에서 대통령 국정 지지도와 민주당 지지도보다 오 시장의 직무수행 평가가 낮다는 것은 내년 총선에서 한국당에게 반사이익이나 어부지리로 작용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민주당 부산시당도 공식적으로 6명 수성을 넘어 과반을 목표하고 있다. 민주당 부산시당의 한 관계자는 “오 시장의 지지도가 낮지만 남북 및 북미 문제가 잘 풀리면 좋은 결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당과 오 시장에게 획기적인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더 크다. 부산 출신 민주당의 현역 의원은 “선거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서 준비하는 것이다. 남북문제가 지금처럼 꼬이면 어쩔 것인가. 내일 국회의원선거를 치른다면 민주당이 참패할 것이다”고 말했다.
오 시장 인수위원회 위원을 지냈던 한 관계자는 “오 시장이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서 업적도 많은 것 같지만 시민들에게 제대로 잘 전달되지 않은 것 같아서 안타깝다. 내년 총선에서 6명 수성도 어렵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3년이다. 새로운 정책을 시민들에게 잘 설명하고 귀를 더 기울이며 비상한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 교수는 “오 시장이 시민 행복과 삶의 질 개선을 위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미래 비전을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결국 오 시장의 코페르니쿠스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부산/김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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