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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사랑이든 애도든 끝까지 끌어안고 가겠다는 결의”

등록 2021-09-07 13:25수정 2021-09-08 02:30

한강, 5년 만의 장편 ‘작별하지 않는다’ 출간
“5·18 다룬 ‘소년이 온다’와 짝 이루는 작품”
소설가 한강이 5년 만의 신작 장편 <작별하지 않는다>를 내고 7일 오전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그는 “어떤 것도 종결하지 않겠다, 그것이 사랑이든 애도든 끝까지 끌어안고 계속해서 나아가겠다는 결의를 책 제목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문학동네 제공
소설가 한강이 5년 만의 신작 장편 <작별하지 않는다>를 내고 7일 오전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그는 “어떤 것도 종결하지 않겠다, 그것이 사랑이든 애도든 끝까지 끌어안고 계속해서 나아가겠다는 결의를 책 제목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문학동네 제공

“가끔, 지금 쓰는 소설이 어떤 소설이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고민이 됐어요. 어떨 때는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고 대답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가는 소설이라고도 대답하고, 또 어떨 때는 제주 4·3을 그린 소설이라고도 이야기했어요. 그 모두가 저에게는 진심이었구요. 그래도 그중에서 하나를 고른다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작가 한강이 신작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펴내고 7일 오전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2016년작 <흰> 이후 5년 만의 신작이다. 한강은 2016년 영역판 <채식주의자>로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받았고 2018년에는 <흰>으로 같은 상 최종후보에 올랐다. 2014년작인 <소년이 온다> 역시 영역 출간되어 좋은 반응을 얻는 등 국제적 작가로 발돋움한 그의 다음 작품이 무엇일지 독자들의 관심과 기대가 높은 터였다. 제주 4·3을 다룬 신작 <작별하지 않는다>는 5월 광주학살을 다룬 <소년이 온다>에 이어지는 작품이라 할 만하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소설가 경하와 동갑내기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인선 두 여성을 중심에 놓고 진행된다. “그 도시의 학살에 대한 책을 낸” 뒤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었던 경하는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돌아온 상태. 소설을 쓰고자 자료를 읽을 때부터 악몽에 시달리곤 했던 경하는 그 책을 내고 두 달 뒤에 어떤 꿈을 꾼다. 눈 내리는 산등성이에서부터 벌판에 걸쳐 마치 묘비처럼 수천 그루 검은 통나무들이 심겨 있고 나무들 뒤로는 봉분들이 엎드려 있는 사이를 걷는데, 어느 순간 바닷물이 차올라 무릎까지 잠기는 속을 당황해서 뛰다가 깨어나는 꿈이다.

경하는 이 꿈 역시 다른 악몽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소설로 쓴 도시의 학살에 대한 꿈이라고 생각하고, 사진과 영화 일을 하다가 어머니를 돌보고자 고향 제주로 내려가 목공 일을 하는 인선과 함께 그 꿈을 영상 작업으로 옮기기로 의기투합한다. 그러나 서로의 일정과 형편이 맞지 않아 작업은 몇 해 동안 진척이 없는데, 어느 겨울 통나무 작업을 하던 중 손가락 절단 사고를 당해 입원한 인선의 당부로 갑자기 제주로 내려가게 된다. 어머니도 돌아가신 뒤라 집에 혼자 남게 된 앵무새를 보살펴 달라는 것. 폭설 속에 가까스로 인선의 집에 도착한 경하가 환상 속에 4·3 피해자이자 생존자였던 인선 어머니의 지난 삶을 만나는 이야기가 소설의 얼개를 이룬다.

“소설 앞부분 두 쪽에 걸쳐 서술된 꿈은 제가 실제로 꾸었던 꿈이고, 2014년 6월 말 즈음에 썼던 거예요. <소년이 온다>를 쓰는 동안이나 책으로 낸 뒤에 계속 악몽을 꾸었는데, 이것 역시 광주에 관한 꿈이라고 생각했지요. 당시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이게 어떤 소설의 시작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잊어버리기 전에 기록해 두었던 것입니다. 그 뒤로 다른 작품들 쓰느라 세월이 흘렀는데, 90년대 후반 제주에 월세방을 얻어서 서너 달 정도 지낼 때 주인집 할머니가 골목의 어떤 담 앞에서 ‘여기가 4·3 때 사람들이 총에 맞아 죽었던 곳’이라고 하신 말씀이 그 꿈과 만나서 이 소설이 되었습니다.”

작가 특유의 시적인 특성이 돋보이는 <작별하지 않는다>는 처음에는 작가 자신을 연상시키는 소설가 경하를 주인공 삼은 소설인 듯 보이다가 그 친구인 인선의 이야기로 중심이 옮겨 가고 결국은 인선의 어머니 강정심이 주인공으로 부각되는 작품이다. 자주 악몽을 꾸며 몸서리 치고 흐느껴 울던 어머니를 “세상에서 가장 나약하고 비겁한 인간”이라 생각하며 거리를 두려 했던 인선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야 자신이 “엄마를 잘 몰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머니가 남긴 신문 기사 등 스크랩을 통해 어머니가 4·3 때 잡혀가 실종된 오빠의 행방을 찾고자 평생을 분투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 어머니는 오빠가 처음 수감되었던 대구형무소와 이감되었다는 진주형무소를 거쳐 결국 보도연맹원과 대구형무소 재소자 수천명이 학살된 경산 코발트 광산을 방문하고 위령제에 참석하며 중앙 일간지와 경북 일간지를 배달해 읽고 스크랩하는 등 노년까지도 오빠의 흔적을 찾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그 과정은 단지 정심의 오빠라는 개인의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니어서, 소설 말미에서 경하는 그런 인선 엄마를 가리켜 “마침내 수만 조각의 뼈들 앞에 다다른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이 대목은 소설의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경하의 꿈과 연결된다.

“이 작품은 어떻게 보면 <소년이 온다>와 짝을 이룬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기는 한데, 앞선 작품인 <흰>이나 <희랍어 시간>은 물론 제 첫 장편인 <검은 사슴>과도 연결되어 있는 작품입니다.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 저도 변형되었고, 그 소설을 쓰기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어요. 그 소설을 쓰는 동안 제게 왔던 악몽과 질문은 제가 평생 가지고 가야 하는 것이 되었죠. 그런데 이 소설을 쓰면서는 저 자신이 많이 회복되었어요.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는 악몽이나 죽음이 제 안으로 깊이 들어오는 경험을 했다면, 이 소설을 쓰면서는 저 자신이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오는 경험을 했어요. 이 소설이 나를 구해 줬지, 그런 마음이 듭니다. 그렇게 죽음에서 삶으로 나왔기 때문에, 다음 소설은 이 소설과는 다른 결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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