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라스의 말
마르그리트 뒤라스·레오폴디나 팔로타 델라 토레 지음, 장소미 옮김 l 마음산책 l 1만6500원
글 쓰는 여성의 아이콘이자, 20세기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인 마르그리트 뒤라스(
사진) 말년의 인터뷰집. 남아 있는 뒤라스의 인터뷰가 적진 않으나 유년부터 황혼까지 전 생애를 훑으면서, 작품과 ‘인간 뒤라스’의 본질을 동시에 추출하겠다는 목표로 다년간 진행된 인터뷰는 <뒤라스의 말>이 유일하다.
70대의 뒤라스를 찾아간 이는 이탈리아인 레오폴디나 팔로타 델라 토레. 이 저널리스트를 만난 뒤라스는 1987~89년에 걸쳐 긴 대화를 나눈다. 대화의 몰입이 어느 정도인지는, 뒤라스를 보면 알 수 있다. 나중엔 뒤라스가 인터뷰어의 인생을 파고들기 위해 질문을 쏟아냈으니.
마흔한 살의 뒤라스. ©Roger Viollet
헤밍웨이상을 수상한 뒤라스(1986). ©Yves GELLIE/Gamma-Rapho
대부분은 글쓰기 여정에 관한 대화다. 그는 왜 쓰는가. “나를 평범하게 만들고 중요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 짐을 내려놓기 위해 글을 써요. 텍스트가 내 자리를 차지해서, 내가 덜 존재하도록.”
공쿠르상을 받기도 한 이 이야기의 대가는 또 말한다. 소설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이 아니라고. “그보다는 이야기를 둘러싼 것들을 환기시켜, 이야기를 중심으로 순간을 창조하고, 이어서 또 다른 순간을 계속해서 창조하는 작업이에요. 독자에게 가닿는 건 절대 직접적인 스토리가 아니에요. 고작 감정이 아닌, 정화되고 남은 잔재가 전달되는 거예요.” 정곡이다.
드물고 어려운 언어보다 일상적이고 쉬운 언어를 주로 쓴 이유도 같은 결을 따른다. “내 안에서 글의 재료가 될 언어의 정화와 압축 작용이 자동적으로 일어나거든요. 글을 절제하고 싶은 열망.”
가식 없는, 졸일 대로 졸여 진액 상태가 된 글의 열망은 이른바 ‘여성적 글쓰기’의 전범으로 불리는 뒤라스 문학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여성은 오래전부터 침묵, 즉 자신에 대한 인식,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능력과 자연스럽고 내밀하게 연관돼 있었어요. 이것이 관념적이고 이론적인 지식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남성의 글쓰기에 결여된, 진정성으로 여성을 이끌었죠.”
옛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서 나고 자란 어린 시절, 18살에 프랑스로 와 “별안간 신발을 신고 스테이크를 먹”으며 수학, 법학, 정치학을 공부한 파리 시절, 공산당원, 레지스탕스의 삶도 촘촘히 재현된다. 연극과 영화로 확장된 문학적 행보, 결혼, 동성애, 알코올 의존부터 더 이상 바흐를 듣기 힘들다는 음악 취향의 변천과 당시 감탄하며 읽고 있던 고전(<클레브 공작부인>)까지, 너무도 생생한 ‘뒤라스의 세계’가 찾아왔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