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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흙더미는 개미의 집, 종이 상자는 나의 집

등록 2022-03-25 05:00수정 2022-03-25 10:51

[한겨레Book] 김소영의 그림책 속 어린이

이 집은 나를 위한 집

마리 앤 호버맨 지음, 베티 프레이저 그림, 엄혜숙 옮김 l 우리학교(2022)

‘사고력’ ‘집중력’ 요즘에는 ‘문해력’까지. 어른들이 어린이가 독서를 통해 얻기를 기대하는 능력들이다. 학습에 영향을 끼쳐서만은 아닐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 필요한 만큼 몰두하는 힘, 쓰인 것 너머를 이해하는 힘은 삶의 모든 시기에 중요하다. 책만 그런 힘을 키워 주는 것은 아니지만, 책만 할 수 있는 부분은 분명히 있다. 나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독서 수업을 한다.

그런데 책읽기란 쓸모만 생각해서는 계속하기 어려운 활동이다. 번거롭고 까다롭다. ‘창의력’ ‘상상력’ 같은 힘을 함께 기를 때 독서가 재미있어진다. 역시 독서 수업에서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점이다. 하지만 고백하자면 나는 언제부터인지 창의력이나 상상력을 어린이와 독서를 연결하는 수단으로 여기고 있었다. 어린이를 즐겁게 하는 콘텐츠가 많아진 시대라서 조급해진 탓인지 모른다. 그림책이 새로운 미디어들보다 재미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경쟁을 피하려고 생각조차 얼버무렸다. 창의력이나 상상력은 덜 중요해졌다.

<이 집은 나를 위한 집>을 읽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그림책에는 동식물뿐 아니라 사물에게도 집을 찾아주는 어린이의 즐거운 세계가 담겨 있다. 어린이 자신의 집도 포함된다. 흙더미는 개미의 집, 벌통은 벌의 집, 거미줄이 거미의 집이듯이 ‘나’에게도 집이 있다. 나무 위의 판잣집, 커다란 종이 상자가 바로 ‘나’, 어린이의 집이다. 고래는 큰 바다가 필요하지만 ‘나’는 파라솔과 해초로 꾸민 집으로 충분하다. 호두껍데기가 호두의 오두막이듯 식탁 아래는 ‘나’의 쉼터다. 어린이는 언제 어디서든 ‘나’의 집을 만들어 낸다. 때로는 누군가와, 주로 혼자서 그 집을 차지한다. 어느 쪽이든 ‘나를 위한 집’이다.

어느 인터뷰에선가 ‘집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 어린이의 말이 생각났다. 코로나19로 가족과 보내야만 하는 시간이 길어져 부담스럽다는 뜻이었다. 팬데믹 중 불안감이 높아지는 가정이 많으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긴장 속에서 어린이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나무에 둥지를 튼 새처럼, 커다란 눈더미 속에 집을 지은 ‘나’처럼 자기 집을 지으면 좋을 텐데. 이 시기의 어린이에게는 사고력이나 문해력보다 창의력과 상상력이 더 절실하다.

“만일 네가 생각하기 시작하면 넌 그게 진짜인 걸 알게 될 거야.” 생각 자체가 진짜라는 의미일 수도, 무엇인가가 생각 속에 있다면 그건 진짜 있는 거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한번 생각하기 시작하면 넌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하게 돼.” 생각해 내고 그려보는 데는 강한 힘이 있다. 아무도 그것을 빼앗을 수 없다. 어린이들이 그걸 꼭 알았으면 좋겠다.

궁지에 있는 어린이일수록 눈에 띄지 않는다. 그들을 찾아내고 도우려면 어른들에게도 창의력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나는 그 힘을 기르는 방법을 한 가지 알고 있다. 그림책을 읽는 것이다. 초등1~2학년.

독서 교육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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