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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따로 또 같이 실현하는 이웃 간 거리를 찾아

등록 2022-05-06 04:59수정 2022-05-06 10:25

건축대상 공유주택 ‘맹그로브 숭인’
이웃 간 적정거리 위한 건축적 해법

사생활 중요하지만 고립 두려운
이웃과의 접촉 위한 촉매제 되야
조성익 건축가가 설계한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공유주택 ’맹그로브 숭인’.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조성익 건축가가 설계한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공유주택 ’맹그로브 숭인’.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주거 실험
조성익 지음 l 웅진지식하우스 l 1만5000원

몇 년 전 ‘셰어하우스’(공유주택)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떠돌더니 금세 잠잠해졌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주거를 공유한다는 아이디어에 예산이 부족한 1인 가구들이 무릎을 쳤지만 이는 곧 공유의 피로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어울려 지내면서도 사생활 보호를 위한 적절한 거리를 만드는 데 많은 공유주택 실험이 실패한 탓이다.

지난해 한국건축문화대상 일반주거부문 대상을 수상한 ‘맹그로브 숭인’은 입주민들, 즉 이웃 간의 ‘적절한 거리’를 끈질기게 탐색해 찾아낸 결과물이다. 맹그로브 숭인을 설계한 조성익 건축가는 신간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주거 실험>에서 함께 지내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최적화된 간격을 도출해내는 과정을 기록했다. 특히 건축가의 탐구와 시선에만 머물지 않고 설계팀의 일원이자 1인 가구인 ‘현수’가 완성된 집에 입주민의 한 명으로 살면서 이 실험의 성과와 한계를 객관적으로 관찰한 점을 평가할 만하다.

2021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일반주거부문 대상을 수상한 ‘맹그로브 숭인’은 입주민들, 즉 이웃 간의 ‘적절한 거리’를 끈질기게 탐색해 찾아낸 결과물이다.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2021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일반주거부문 대상을 수상한 ‘맹그로브 숭인’은 입주민들, 즉 이웃 간의 ‘적절한 거리’를 끈질기게 탐색해 찾아낸 결과물이다.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설계 전 잠재적 거주자들의 다양한 바람을 관통하는 핵심은 이랬다. “완벽하게 사생활이 보호되었으면 하지만, 그렇다고 혼자 고립되기는 싫다.” 이러한 요구에 대한 저자의 건축적 해법은 “짧지만 잦은 스침”, 다시 말해 “함께 사는 사람들과 만남의 횟수를 늘리되, 그 시간을 짧게 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얽히고설킨 뿌리 사이사이로 물고기, 문어, 소라가 각자의 거처를 차지하면서도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열대 식물들 맹그로브는 이 공동주택의 목표를 담고 있는 건축주의 작명이기도 했다. 여기에 서울 도심 비싼 땅값을 상쇄하면서도 비싸지 않은 임대료까지 유지해야 하는 경제성은 전제조건이었다.

“짧지만 잦은 스침”을 위해 건축가가 공유 주거의 상징적 공간인 라운지에 들여놓은 것은 커다란 테이블이다. 이를 둘러싸고 소파나 의자를 배치해 입주민들은 적절한 거리를 확보하면서 책이나 스마트폰을 보다가 잠시 고개를 들어 이웃을 볼 수 있게 했다. 주방 바닥의 높이는 식탁 바닥 높이보다 약간 낮춤으로써 요리하는 사람과 식사하는 사람 사이 자연스러운 눈 맞춤이 이뤄지도록 했다.

’맹그로브 숭인’의 방들은 길고 좁게 만들어 공간활용도를 높이면서도 깊이감을 통해 답답한 느낌을 줄였다.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맹그로브 숭인’의 방들은 길고 좁게 만들어 공간활용도를 높이면서도 깊이감을 통해 답답한 느낌을 줄였다.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특히 흥미로운 공간은 주방으로 가는 우회로다. 때로 완전히 혼자 있고 싶거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사람들과 어울리기 부담스러울 때를 위해 건축가는 세탁실을 거쳐 주방 뒷문으로 가는 우회로를 만들었다. 무엇보다 우회로가 신발장을 거치도록 해 신발을 가지러 가는 척하면서 이웃을 피할 수 있게 했다. “목적이 명백한 공간은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는 공간 설계의 미묘한 법칙까지 정교하게 적용해 입주민들이 우회로를 선택할 때 심적인 부담을 없애준 것이다.

성공하지 못한 시도도 소개한다. 어린 시절 이웃집 난간에 앉아서 보내던 시간을 추억하는 네덜란드 건축가의 아이디어를 빌려 건물 담장을 낮춰 벤치로 쓰도록 했지만 실제로 앉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의도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무덤덤하게 아닌 척하는 자연스러운 디자인”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종로구에 위치한 공유주택 ’맹그로브 숭인’.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종로구에 위치한 공유주택 ’맹그로브 숭인’.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집이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답해온 저자는 맹그로브 숭인 관찰기를 쓰면서 “집이 품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변화시킨다고. 그 과정에서 집은 사람들끼리 의미 있는 접촉이 일어나도록 도와주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고 답변을 좀 더 정교화하게 됐다고 말한다. “집이 목적이 아니라 삶이 목적인 집”, 거주자들의 성장을 돕는 경험의 제공처로서 집의 의미에 대해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할 때도 됐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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