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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생각] 갈라치기, 불평등·폭력 조장하는 유구한 통치 전략

등록 2022-07-29 05:00수정 2022-07-29 09:36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
정치와 죽음의 관계를 밝힌 정신의학자의 충격적 보고서
제임스 길리건 지음, 이희재 옮김 l 교양인(2012)

미국의 정신과 의사 제임스 길리건은 오랫동안 폭력행동의 심리적 메커니즘과 예방책을 연구해 온 이 분야의 권위자다. 그는 1966년부터 34년간 하버드대 의대 교수를 역임했고, 1977년 이 대학 법정신의학연구소 소장에 취임한 뒤 1992년까지 자살률과 살인율이 특히 높았던 매사추세츠주 브리지워터 교도소 정신병원 의료책임자로 활동하며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폭력예방을 위한 사회심리학적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결과 10년 후 이 병원의 자살과 살인 비율이 0%대로 떨어지는 커다란 성과를 거뒀다.

정신과 의사로서 수많은 임상경험을 쌓은 길리건 교수는 자살과 살인이라는 극단적 폭력의 원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정치와 폭력이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을 확인한다. 그는 1900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의 살인율과 자살률 통계를 살피면서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된다. 어째서 공화당 집권 시기에 ‘폭력 치사’(타인을 살해하는 ‘살인’과 스스로를 살해하는 ‘자살’을 합해서 ‘폭력 치사’로 정의) 발생률이 급증하고, 민주당 집권기에 이 비율이 급감하는가라는 것이었다. 그가 밝혀낸 원인은 한 마디로 ‘불평등’이었다.

보수정당의 열성적인 지지자들은 높은 소득세, 자본이득세, 법인세, 상속세 같은 과도한 규제가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고 주장하지만, 미국의 보수 성향 경제연구소인 전미경제연구소의 통계에 따르면 “보수는 경제에 강하고, 진보는 경제에 약하다”는 그들의 믿음은 틀린 것이었다. 실제로, 1900년부터 2010년 10월까지의 통계에 따르면 불황은 민주당 정부 시기보다 공화당 정부 때 3배 이상 자주 발생했고, 한번 시작된 불황은 민주당 때보다 무려 4배 이상 장기간 지속되었으며 집권 이후 차기 정권에 불황을 유산으로 넘길 확률도 4배 이상 높았다. 물론 불황 기간에도 부자들은 불황을 이용해 돈을 벌었다.

어째서 미국 국민은 불평등과 폭력이 늘어나는 정책을 펼치는 보수정당에 투표하는가? 이 책에서 그는 “아득히 먼 옛날부터 소수가 다수를 다스리는 수법으로 애용해 온 전략”, 로마 황제들이 ‘분할 정복’이라 부르고, 우리는 ‘갈라치기’라고 부르는 혐오 전략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기득권 세력(백인남성 부유층)이 인종주의와 인종차별을 부추기는 이유는 그래야만 못사는 백인 노동자들이 더 못사는 흑인 집단을 깔보면서 우월감을 느낄 수 있고, 그래야만 훨씬 재산이 많고 잘 사는 백인에게 질투나 앙심을 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사회적으로 발생하는 어떤 문제도 사회화하지 않는다. 보수세력은 실업, 불황, 빈곤이 심화되고, 경제가 어려워지면 자살률과 살인율이 올라간다는 사회문제를 사회 바깥에서 벌어지는 개인적인 재앙으로 만든다. 정책의 실패, 정치의 실종이 원인이 아니라 자살은 개인의 정신질환, 절망감 같은 사적인 원인에서 발생하는 사적인 행위이며, 살인은 개개인의 윤리적 결함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지난 6월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자살률은 지난 17년간 부동의 1위(2019년 현재 24.6명)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고, 회원국 평균(11명)보다 2.2배나 높다. 같은 기간 동안 해외의 다른 국가들은 자살률이 감소했다. 길리건 교수의 분석을 적용해보면 우리도 이 같은 의문에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불평등을 혐오와 갈라치기로 위장해온 해로운 정치(인)가 그 원인이다.

전성원/<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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