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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대추리, 지 고향이여유” 정태춘의 싸움

등록 2006-03-30 21:13수정 2006-03-31 16:43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최재봉의 문학풍경

“저기 떠나가는 배 거친 바다 외로이/겨울비에 젖은 돛에 가득 찬바람을 안고서/언제 다시 오마는 허튼 맹세도 없이/봄날 꿈 같이 따사로운 저 평화의 땅을 찾아…”

가수의 노래는 이렇게 이어져야 했다. “가는 배여, 가는 배여, 그곳이 어드메뇨/강남 길로 해남 길로 바람에 돛을 맡겨…”

그러나, 이어지지 못했다. 고음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가수는 고개를 떨구었다. 객석의 관객들이 가수를 대신해 노래를 마무리했다. 뜨거운 박수가 이어졌다.

지난 24일 저녁 서울 명동성당 문화관 꼬스트홀. ‘북녘 나무 보내기 기금 마련 콘서트’에 참여한 정태춘(52)씨의 컨디션은 처음부터 좋아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가 가뭄 때의 논바닥처럼 거칠게 갈라졌다. 결국 ‘사고’를 쳤다. 관객들의 도움으로 노래를 마친 그는 한동안 호흡을 고르고 목을 가다듬더니 문제의 부분을 다시 불렀다. 이번에는 무사히 넘어갔지만, 역시 최적의 소리는 아니었다.

그는 목이 덜 풀렸노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뒤이어 무대에 오른 부인 박은옥씨의 설명은 달랐다. 지난 15일 평택시 팽성읍 황새울 들에서 있었던 시위에서 경찰에 연행되는 과정에 들고 있던 현수막에 목이 졸렸다고 했다. 두 사람은 예정에 없던 노래 <사랑하는 이에게>를 함께 부르는 것으로 관객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했다.

정태춘씨가 목을 다치고 결국 2박3일의 유치장 신세까지 지게 된 시위는 미군기지 확장을 위한 토지 수용에 반대하기 위한 것이었다. 정태춘씨와 박은옥씨는 지난해 8월부터 10월까지 이 투쟁의 취지를 시민들에게 알리고 지원을 호소하는 거리 콘서트를 연 바 있다. 싸움이 본격화한 올해 들어서는 매주 토요일 옛 대추분교에서 열리는 ‘비닐하우스 콘서트’를 꾸리고 문화예술인들의 동참을 이끌어 내는 등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명동성당 콘서트 이튿날인 25일엔 문인 단체인 한국문학평화포럼 회원들이 대추리를 찾았다. 정태춘씨는 이들에게 대추리 곳곳을 안내하고 싸움의 경과를 보고하는 등 분주한 모습이었다. 부인 박은옥씨 역시 손수 참가자들의 식사를 챙기느라 식당에서 바빴다. 저녁에 이어진 비닐하우스 콘서트에서 정태춘씨는 초대 가수인 김원중씨의 노래 <직녀에게>를 자청해서 따라 부르기도 했다. 표정과 목소리 모두 명동성당 공연장에서보다 한결 안정되고 편안해 보였다.

정태춘씨는 2004년에 <노독일처>(실천문학사)라는 제목의 시집을 낸 적이 있다. 거기에 <지 고향이 원래>라는 제목의 시가 들어 있다. “지 고향이 원래 평택이거던유/아무리 경기도라구 폼 잡어두/조선조 말꺼정은 평택 남부 지역 일대가/대개 충청도에 속해 있었대는규…”로 시작되는 18쪽짜리 장시다. 자신을 화자로 삼아 미군기지 확장 계획을 고발하는 내용이다.

“참/큰일났슈/인저 황새울 뺏겼구,/머잖어 대추리두 쫓겨나게 생겼구/담인 도두리두 멕힐지 물러유/거기가 지 고향이여유/지가 인저 돌아가서 살고 싶은 고향이란 말여유, 참”

24일 공연에서 그는 “대추리와 도두리는 내가 태어나 자라며 뛰놀던 곳이자 내 서정의 뿌리”라며 대추리 싸움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호소했다. 말을 하는 동안 그의 음성은 분노로 떨렸다. 그에 이어진 박은옥씨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정태춘이 아니었으면 나는 다만 편안한 삶을 살고 싶어하는 평범한 사람이었을 텐데, 이 사람을 따라 다니며 세상의 어둡고 고통스러운 모습을 많이 보게 되었어요. 고맙다고 해야 할지 원망해야 할지….”

그러나 <사랑하는 이에게>를 함께 부르는 그이의 얼굴에서는 남편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한껏 묻어났다. 가수 부부의 분노와 싸움이 다름 아닌 사랑에 기반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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