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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후회없는 선택 원한다면 ‘의사결정나무’를 그려라

등록 2006-11-09 20:59

판단력 강의 101<br>
데이비드 헨더슨·찰스 후퍼 지음. 이순희 옮김. 에코의서재 펴냄. 1만3000원
판단력 강의 101
데이비드 헨더슨·찰스 후퍼 지음. 이순희 옮김. 에코의서재 펴냄. 1만3000원
어떤 영화를 볼지부터 어디에 집을 살지까지
미시경제와·계량경영학 동원해 최적의 선택을 하는 방법
<타짜>를 볼까, <라디오 스타>를 볼까. 강남 아파트를 살까, 삼성전자를 살까.

우리는 날마다 선택한다. 아니 삶 자체가 크고 작은 선택의 여정일 것이다. 갈림길은 어김없이 나오고 여전히 우린 멈칫거린다. 그 앞에 경제학자와 컨설턴트가 손잡고 나타났다. 이내 강의가 시작된다. ‘판단력 강의’ 101호실에서.

두 강사는 여러 분석도구를 사용해 길을 가리킨다. 비용과 수익을 계량해 의사결정을 하라는 것이다. 여기서도 우린 선택에 직면한다. 의사결정론 강의를 들을 것인지 말 것인지부터 의사를 결정해야한다. 가을을 건너뛰는 진눈개비가 내리고 곧 날은 저물것만 같은데 말이다. 그래도 일단 수강신청을 하고보자.

다양한 얘깃거리로 강의를 풀어가 졸리지 않는다. 2차대전이 끝난뒤 보트를 즐겨타던 패트는 납 가격이 치솟는 걸 보고 무릎을 쳤다. 보트의 용골(배 바닥의 중앙을 받치는 긴 뼈대)이 바로 납이었던 것이다. 곧바로 납을 뜯어내고 철로 된 용골을 붙였다. 납 용골을 보트 값보다 더 비싸게 팔았다. 물론 보트도 팔고. 그 돈으로 다시 보트를 사고 납을 뜯어내 팔고… 열일곱 청년은 갑부가 되었다. 싸게 사서 비싸게 되파는 ‘차익거래’덕분에.

강사가 갑자기 엄숙해진다. “차익거래는 부도덕한 게 아니야” 청년의 순발력이 납이 긴요한 사람을 도와주었을 뿐만 아니라 납의 공급을 늘려 가격을 안정시킨 것이다.

얼마전 조지 소러스와 함께 퀀텀펀드를 만든 짐 로저스가 한국에 와 한 말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한국 주식 다팔고 중국 주식을 샀다” 는 대목은 서운하지만 “강남을 팔고 강북을 사라”는 말은 어리둥절하기까지 했다. 좀 오버한 느낌은 들지만 거품이 끼었으면 팔아야한다는 원론엔 동의하지않을 수 없다. 이 역시 차익거래로 가격 안정화에 기여할 것이니 헤지펀드라고 미워만 해선 곤란하다.

납의 사례는 물과 다이아몬드로 이어진다. 물 없인 살 수 없지만 다이아만 있으면 그깟 물 쯤은 얼마든지… 그 유명한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대비. 익숙한 내용이라 잠깐 졸고 있는 사이 ‘기회비용’ 단원으로 넘어간다. 당신이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려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하필 이때 배우 문근영에게서. 여친과 데이트하는 ‘기회비용’은 감당하기에 너무 아리다. 하지만 평범한 그대에겐 그런 갈등은 현실에서 찾아오기 힘들다. 사실 이 대목이 더 아리다. 기회비용도 품격에 따라 양극화 한다는 점을 눈치채서다.

18세기 영국작가 사무엘 존슨은 당신이 본 연극이 볼 만했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볼 만하지만 보러 갈만한 가치는 없다” 시간의 기회비용 측면에서 볼 가치는 있지만 마차를 세내어 극장까지 가서 볼 가치는 없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비디오 나올 때까지 기다려라”가 정답이다. 이미 무덤에 들어간 ‘매몰비용’에 미련을 두지말고 과거는 잊어라는 것이다. 증시에서 개미들이 맨날 당하는 것도 이와 밀접하다. 미래가치와 상관이 없는 과거에 산 가격을 잊지못해 주가가 하염없이 흘러내려도 손절매를 못하는 것이다.


판단을 그르치는 사례도 귀 기울일 만하다. 2004년 미 첩보기관은 이라크 위성사진을 분석하면서 화학무기 제조를 위해 사용된 탱크로리의 사진들이 급증한 것을 발견하고 환호했다. 하지만 정작 원인은 미국의 위성 감시 카메라가 늘어난 데 있었다. 부시에 부메랑이 된 이 전쟁은 그렇게 밀어붙여졌다. 한국의 보수 신문들은 참여정부의 언론중재 신청이나 소송 등이 어느 역대 정권보다 많아졌다며 탄압을 중지하라고 거품을 문다. 보수언론의 이 정부에 대한 새디즘이 어느 정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해진 게 먼저인데도 매저키스트로 위장한다.

이 강의는 미시경제와 계량경영학의 기법을 풍부한 현실 속으로 끊임없이 투영하면서 의사결정과정을 완성해나간다. 다만, 경우의 수를 늘어놓고 합과 곱의 법칙을 오고가는 ‘의사결정나무(decision tree)’에 익숙해지려면 오랜만에 연필을 들어야하는 수고가 필요할지 모른다. 이제 이 강의의 기회비용과 매몰비용을 마주하며 기회주의적이든 매몰차든 그 선택지는 전적으로 독자의 의사결정나무에 달려있다 .

한광덕 기자 k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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