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이란 말 대중화시키고 오늘날 반민족특별법 만들기까지
거슬러가면 민족사학자 임종국 있어 “그분의 길 따라가겠다”
거슬러가면 민족사학자 임종국 있어 “그분의 길 따라가겠다”
인터뷰 / <임종국 평전>펴낸 정운현씨
‘친일파’ ‘친일’이란 단어가 지금처럼 누구나 다 아는 말이었던 건 아니다. “대학생들이 질문을 하되, <친일문학론>이라니, 문학으로 한일 친선을 하자는 책이냐? 하는 판이었다. 그럴 수밖에. 당시의 대학생들은 해방 후 출생이라 친일파라는 단어조차 못 듣고 살았다.” 임종국(1929~89)이 쓴 ‘제2의 매국, 반민법 폐기’를 보면 60년대 후반까지도 그랬다. ‘친일’이란 말이 대중적으로 정착되는 데는 이 <친일문학론> 덕이 컸던 게 분명하다.
<친일문학론>. 1966년에 나와 임종국의 대표저작이 된 이 책의 출간은 우리 문학계의 친일문제를 처음으로, 제대로, 까발렸을 뿐 아니라, 한국사회의 정체성을 전국민적 차원에서 되묻게 만든 일대사건이었다. 1991년 반민족문제연구소가 출범해 <친일인명사전> 편찬이 구체화하고 2004년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가동을 시작한 것, 그리고 매국노 이완용 후손의 조상 땅찾기가 철퇴를 맞게 된 것까지도 <친일문학론>의 공이라 주장해도 크게 틀림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출판 당시 출판사 찾기조차 어려웠고 동료들마저 ‘큰일 당한다’며 내지 말라고 말렸다. 어렵게 낸 초판 1500부를 소화하는데 꼬박 13년이 걸렸고, 79년 10·26사건으로 세상이 뒤집힌 뒤에야 겨우 재판을 찍었다. 초판 1500부 가운데 국내에서 팔린 것은 500부였고 나머지 1000부는 일본에서 사 갔다. 이 책을 낸 평화출판사쪽에 따르면 93년에 8쇄를 찍은 이 책 총 발행부수는 1만1200부다. 역시 세상을 움직이는 건 이른바 ‘베스트셀러’가 아닐지도 모른다.
<대한매일>(서울신문)에 ‘친일파 열전’을 장기 연재하는 등 남달리 친일문제에 천착해온 <오마이뉴스> 초대 편집장 출신 정운현(47)씨가 <임종국 평전>을 냈다. 임종국 평전으론 처음이다. 저자가 일인칭 ‘나’로 등장해 이야기를 끌어가는 이 독특한 평전 머리말에 이런 구절이 있다. “대다수 평전들이 ‘전(傳)’은 넘쳐나는데 비해 ‘평(評)’은 부족했다고 생각해온 터였다.” 그렇다고 해서 ‘평’만 늘어놓은 건 물론 아니다. “그 동안 평전들이 대체로 건조체에다 내용도 너무 무거웠다. 중요한 건 형식이 아니다. 알맹이만 있으면 재미있고 술술 읽히는 평전을 쓸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방대한 문헌과 증언들을 담은, 다른 평전과는 좀 다른 1500매 분량의 본문에다 다른 평전엔 아예 없는 ‘집필 일기’ 180매까지 넣어 내용중의 각 국면들이 어떤 상황, 어떤 생각속에서 씌어졌는지도 알 수 있게 해주는 실팍한 책이 만들어졌다.
임종국에게 <친일문학론>만 있는 건 아니다. 그는 등단 시인이며 3권짜리 <이상 전집>을 펴내 학계에 이상 연구와 전집 출판 열기를 선도했고, <한국문학의 사회사> <한국문학의 민중사> 등을 낸 역량있는 문학자요 <일본군의 조선침략사> 등을 쓴 사학자였다. 저자는 그를 “수도승처럼 세속 명리를 버리고 평생을 살다한 진정한 민족사학자”라고 정리했다.
일전에 김희선 국회의원의 선대 핏줄에 관한 발언을 두고 일어난 그 요란한 소동은, 김씨의 발언 진위 여부와는 별개로, 김씨가 친일진상규명특별법 발안자였기 때문에 야기됐다는 설이 분분할 정도로 우리사회는 아직도 ‘친일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국립대 교수가 선배 교수의 과거 친일경력을 논문에서 지적했다는 이유로 재임용에서 탈락한 것도 바로 엊그제 일이다. 그럼에도 임종국이 드러낸 그 민감한 친일상처 당사자나 유족들 또는 이해관계자들이 “뜻밖에도” 그를 헤코지하거나 공격하지 못했던 건 “그가 발로 뛰어 찾아낸 객관적 자료들 덕, 총칼보다 무서운 자료들의 힘” 때문이었다고 저자는 강조했다.
임종국은 평생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재단 등의 연구비라도 타보라는 권유조차 “그러면 붓끝이 떨린다”며 거절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사무처장직을 맡고 있는 저자는 그런 “선생의 길을 따라 가겠다”며 친일연구를 “필생의 업”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글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글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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