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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조선의 예언서는 미신이 아닙니다”

등록 2006-11-30 22:41수정 2006-11-30 22:53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 백승종 지음. 푸른역사 펴냄. 1만4500원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 백승종 지음. 푸른역사 펴냄. 1만4500원
한국 미시사 연구 선두주자
예언서는 시대를 읽는 코드
‘정감록…’이해 쉽도록 팩션으로
“미시사로 접근해야 민중 살아나”
인터뷰/<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한국 예언 문화사> 편낸 백승종씨

“계룡산의 돌이 흰 빛이 되고 …큰 흉연이 들고 호환(虎患)으로 사람이 다치고 …어찌 사람이 살 수 있는가… 계룡산에 나라를 세우면… 장수가 개국일등공신이 된다.” <정감록>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제 조선왕조가 망할 테니 살고 싶으면 십승지나 길지로 들어가 숨어라, 그러면 정씨 성을 가진 진인이 나타나 계룡산에 수도를 둔 새 왕조를 창건한다.

조선시대 예언서들은 대부분 그냥 이야기가 아니다. 그 뒤에는 비밀결사가 있었고 피바람이 불었다. 거기에는 현세의 비참과 한계에 절망한 당대인들의 새 세상에 대한 강렬한 염원과 목숨을 건 저항의 흔적들이 스며 있다. 그것은 조선시대를 온전히 읽기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코드다.

“조선시대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예언서들의 위력이 컸다. 동학이니 증산교, 그리고 지금의 원불교에 이르기까지 19~20세기에 등장한 새로운 종교들도 예언서들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근대가 서구에서만 진행된 게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등에서도 동시에 진행됐다는 ‘복수의 근대’ 담론이 힘을 얻고 있는데, 그렇다면 조선의 근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기존 성리학적 이데올로기에 대항한 새로운 지적, 사회적 움직임이 없었을 리 없고 결국 <정감록> 등의 예언서, 그것과 묶인 비밀결사들에 주목했다. 그동안 우리는 서구 근대 담론에 함몰돼 이 중요한 우리 역사이해의 코드들을 방기해왔다. 예언서들은 결코 단순한 미신이 아니다.”

한국 예언 문화사. 백승종 지음. 푸른역사 펴냄. 1만6500원
한국 예언 문화사. 백승종 지음. 푸른역사 펴냄. 1만6500원
독일과 프랑스 미시사를 공부한 한국 미시사 연구의 제1세대 선두주자 백승종 교수가 일찌감치 이 ‘사실상의 전인미답’에 도전장을 냈고, 그 첫 성과물로 <한국의 예언문화사>와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을 한꺼번에 출간했다. 10여년 전 박사학위 논문을 쓸 무렵부터 관심을 갖고 그때그때 학술지 등에 발표해온 <정감록> 중심의 논문들을 묶은 것이 <한국의 예언문화사>.

이 정통 학술서에 비해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은 ‘역사적 상상력’을 종횡무진 구사한 ‘역사 진실게임’같은 팩션형태의 파격이다. “민중의 기대와 좌절이 스민 예언서 연구는 논문형식의 학술서 형태만으론 이해를 확장하는데 한계가 있다. 구체적인 개인들을 등장시켜 역사적 진실을 다양한 등장인물들 각자의 시각으로 중층적으로 파악하게 하는 데는 팩션이 제격이다.” 그리하여 “영조 9년 4월 중순, 마침 비가 그쳤지만 …어둠 속에서 두 사나이가 불쑥 나타났다.”로 시작되는 <~진실게임>은 한 편의 소설처럼 박진감있게 진행된다. 1733년의 이 ‘김원팔 일가의 <남사고비결> 역모사건’, 정조 7년(1783년)의 ‘문인방의 정감록 역모사건’, 정조 9년의 ‘문양해의 정감록 사건’을 다루면서 저자는 1인칭 화자, 신문관, 해설자 등 다양한 형태로 개입한다. “일반역사서에서 역모자들은 범죄자, 반역자 취급을 당하지만 그건 왕조중심의 시각이다. ‘역적’ 조사기록도 자세히 뜯어보면 진술자들의 상호관계나 전략, 그들의 삶 자체가 새롭게 보인다. 같은 텍스트를 놓고 전혀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다. ‘역모자’들이야말로 오히려 지금 우리들에 더 가까울 수 있다.”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 <한국 예언 문화사> 편낸 백승종씨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 <한국 예언 문화사> 편낸 백승종씨
그는 역사서술에서 ‘술이부작(사실을 기록하되 지어내서 쓰지는 않는다)은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차라리 술이작(기록하되 제 생각대로 쓰는 것)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동원하는 허구조차도 근거 없이 ‘날조’해선 물론 안된다.

<~진실게임>의 세 사건은 각기 별개의 것이지만 거기엔 일관된 발전적 흐름이 관통한다. 예컨대 18세기 주로 서북지방에서 시작된 예언과 비밀결사 움직임은 세번째 사건으로 가면서 점차 남쪽 지방으로 확산되며, 담당주체들도 지역 엘리트 계층 중심에서 유랑하는 평민지식인들로 중심이 옮겨 간다. 예언서들 내용도 점차 정교해지고 마침내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단계로 나아간다. “거시적으로 역사를 보면 민중은 죽어버린다. 그들이 실제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았는지, 그들의 다양한 생존전략은 어떤 것이었는지를 알려면 미시사적 접근이 필요하다.”


글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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