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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국가의 시장만능주의’가 문제다

등록 2007-01-26 20:23

김동춘 교수
김동춘 교수
김동춘 교수 ‘공병호 소장의 기업사회론 반박’ 재반론
공병호 박사(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의 ‘기업사회’ 비판글(〈한겨레〉 1월23일치 27면)에 대해 당사자인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가 반론글을 보내와 싣는다.

우리시대 시장경제의 전도사 공병호 소장은 필자의 글이 기업 및 시장에 대한 잘못된 가설에 기초해서 잘못된 결론에 도달했다고 지적한다. 곧 기업은 서로 간에 생존을 위해 경쟁을 하는 원자와 같은 존재인데도 마치 자기들끼리 단결해서 세상을 지배하려는 존재로 가정하고 있으며, 시장경제에서 경쟁력을 확보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살아남게 된 기업 및 기업가들의 영향 확대를 정치적 지배와 같은 차원에서 파악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내 글이 단순한 반기업 정서의 표출이거나 시장경제에 대한 무지에 기초해 있다는 그의 비판은 과녁을 빗나갔다. 나는 사회의 군사화와 비견되는 국가와 사회의 기업화 경향, 시장만능주의 경향과 씨름하고 있을 따름이다. 나는 기업이 자기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원자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으며, 따라서 비경제 영역에서의 대기업들의 공동행동이 노동자의 단결과는 근본적으로 성질을 달리할 뿐더러 개별 기업의 시장 몫 확대도 정치적 지배력 강화와는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다만 나는 대기업들의 효율성이 ‘사회’ 혹은 국가의 효율성과 동일한 것이 아니며, 자본주의 사회의 낭비와 비효율은 고스란히 사회 일반 혹은 다음 세대가 떠 맡아야 하고, 기업들은 개방과 유연화만을 선호하는 것이 아니라 독점 혹은 전쟁까지도 선호할 수도 있으며 현대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권력적 존재라고 보기 때문에 그와 나의 생각의 편차는 크지만, 이 점들은 내 책의 핵심적 논지는 아니다.

오히려 나는 온 나라, 온 도시를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구호로 도배를 하는 이 행정문화, “우리가 이건희 회장을 부를 자격이 있나”라며 재벌 총수 국회소환조차 거부하는 정치가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자는 구호 아래 정의의 잣대를 종종 사회적 약자에게만 들이대는 사법부, 어제까지 기업 감시를 주요 업무로 하는 공직에 종사하다가 오늘 바로 퇴직하여 그 기업의 품에 안기는 고위 공직자들의 행태들 아래에 깔린 구조를 문제 삼고 있다. 아무리 기업이 정부에 비해 높은 경쟁력을 갖고 있으며, 또 ‘자본 위주의’ 세상이 되었다는 점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공공기관이 사회를 유지해가는 최소한의 공공성을 포기하고 사기업의 이익에 굴복하는 나라가 과연 한국 말고 있는지 묻고 싶다.

‘반기업·시장경제 무지’는 과녁 빗나간 잘못된 비판
공공기관마저 공공성 포기…거대 사기업 이익에 굴복

시이오(CEO)가 이 시대의 가장 ‘경쟁력 있는’ 리더의 모델이라고 하더라도, 정치가들이 후원금 조달(fund-raising) 활동을 가장 우선시하고, 모든 능력 있는 변호사가 기업의 자문역이 되고, 자치단체장이 주민의 삶의 공간을 기업처럼 ‘경영’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는 미국식 시장사회로의 걷잡을 수 없는 경도 현상이 한국의 바람직한 발전방향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과거에는 ‘안보’를 내세우며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인정하지 않다가 이제는 시장과 경쟁력 강화를 성역화하는 이 현실이 세상을 ‘식민화’하려는 기업가들의 집요한 ‘음모’의 결과라고 보지는 않는다. 20살도 안 된 대학생들이 입학하자마자 주식투자 동아리에 가입하고, 젊은이들이 결혼까지 ‘투자’로 보는 이 ‘민주화 이후’ 한국의 풍경은 지구적 시장근본주의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의 반공 획일주의, 성장주의라는 토양에서 성장한 것이 분명하다. 과거 정경유착이 불투명한 시장조건 아래서 살아남기 위한 기업의 본능의 소산이었듯이 사회를 기업처럼 재조직하는 이 경향 역시 세계화, 개방이라는 경제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업의 본능적 행동의 결과일지 모른다.

그러나 과거의 무차별적인 안보논리에 대한 견제가 필요했듯이 기업의 이러한 본능이 사회를 지탱하기 위한 최소한의 공익을 해치지 않도록 견제가 필요하며, 안보물신주의보다 더 무서운 시장물신주의의 위세에 눌려 있는 사회, 정치, 행정의 제자리 잡기가 필요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국위를 선양하는’ 잘 나가는 글로벌 기업의 발목을 잡자는 것이 아니다. 사회가 곧 기업이라는 목소리가 비판 없이 통용되어서는 안 되며 ‘기업 따라 배우기’의 구호 아래 모든 사회조직이 기업의 본을 따라야 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점, 기업의 효율성이 사회의 효율성을 보장해 주지 않을뿐더러, 아파트 매매도 투자 마인드로 접근해야 하는 사회에서 대다수 사회 구성원의 삶은 피폐해질 것이라는 점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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