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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점입가경’ 베스트셀러 만들기

등록 2007-07-06 19:28

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한기호의 출판전망대

한 출판사가 책의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유지하기 위해 마케팅 비용으로만 월 평균 1600만원, 1년에 2억 원 가까이를 서점 한곳에 쏟아부었다고 한다. 마켓파워를 가진 서점이 4~5곳 정도이니 책 한권에 얼마나 많은 비용이 서점에 투여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마케팅 비용이 이렇게 과하다 보니 죽어라고 책을 팔아봤자 손에는 아무것도 쥐지 못하는 형편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출판사의 베스트셀러 만들기는 점입가경이다. 1만2000원 정가의 책에 20만원 가까운 정품 시디를 경품으로 준다. 1만원 정가의 신간을 예약판매하며 ‘10% 할인, 25% 마일리지, 5천원 할인쿠폰, 배송비 무료(2천원 안팎)를 내건 경우도 있다. 독자가 책을 주문하는 순간 출판사는 바로 권당 500원 이상 밑지고 들어가는 셈인데도 이런 일은 더욱 늘어날 듯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베스트셀러에 등재하려는 무한할인 경쟁의 결과다.

당연히 사재기도 극성을 부린다. 1만원 정가의 책은 대형 온라인서점에 보통 5500원에 공급된다. 이 책을 사재기한다고 치자. 정가에 10% 할인, 15% 마일리지를 적용해서 되사면 7500원이 된다. 공급한 책값은 서점에서 벌써 받았으니 출판사는 2천원의 비용만 투입하면 된다. 광고나 홍보보다 ‘약발’이 훨씬 잘 받는 셈이다.

사전예약판매이벤트는 대부분 사재기를 할 사람을 미리 모아놓고 시작한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사전 예약판매이벤트를 통해 당첨자를 모집하지만, 보통 신청자 모두가 당첨되기 마련이다. 당첨자는 온라인서점이 휴대전화로 쏴준 바코드를 가지고 책을 공짜로 구입하니 이 또한 명백한 사재기다. 출판사 영업자가 직원을 통해 500권을 주문하면서 수신자의 주소를 다 달리 해도 판매부수는 베스트셀러 순위에 집계된다.

판매데이터를 확인하면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만큼 당연히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빠져야 하지만 서점은 어떻든 상관없다는 식이다. 이렇듯 온라인서점과 출판사가 공조해 대놓고 사재기를 하는 마당이니 더 말해 무엇하랴. 앞으로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사재기의 유형은 날로 진화할 것이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창의적 기획물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신뢰도가 가장 있다는 교보문고 올해 상반기 베스트셀러 20위 안에는 번역서가 11종이 포함되어 있다. 국내서는 경제경영 네 권(한 권은 종교로 분류됐지만 자기계발서에 가깝다), 영어책 두 권, 카툰만화 한 권을 빼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삶을 다룬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신웅진, 명진)와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학고재)만 달랑 남는다.

번역서까지 합하면 절반이 경제경영이다. 한 출판사 영업자는 이런 결과를 두고 “아이엠에프 사태라는 ‘전쟁’을 겪었다고 해도 한국인이 언제 경제경영서를 그렇게 많이 읽었는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사재기를 벌이기 쉬워서 나온 결과”가 아닌가 하고 말했다. 조금 과한 느낌이 있지만 일리가 없지는 않아 보인다. 이유야 어쨌든 요즘 이 땅의 베스트셀러는 공공적 자산이 되기는커녕 비아냥거림이나 받는 애물단지로 전락한 듯하다. 당연히 사회적 트렌드를 찾아보기도 어렵다. 한 대형 온라인서점 사장은 일전에 “우리가 출판 트렌드를 만든다”는 공언했다고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그 말의 위력을 절감하고 있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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