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봉 문학전문기자
최재봉의 문학풍경
광복 직후 조선문학가동맹을 결성하고 서기장을 역임하다가 월북한 김남천의 소설 〈1945년 8·15〉(작가들)가 발굴·소개되었다. 국문학자 이희환(인하대 BK21 박사후연구원)씨가 책임편집을 맡은 이 작품은 김남천이 1945년 10월15일부터 이듬해 6월28일까지 〈자유신문〉에 연재하다가 중단한 미완의 장편소설로, 책으로 묶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광복 이후 최초의 장편소설로 꼽히는 〈1945년 8·15〉는 해방 공간의 풍경을 거의 동시대적으로 관찰하고 기록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8·15에서부터 9월 하순까지 달포 남짓한 기간이다.
“전 조선 각지에 구속되어 있는 정치범을 즉각 해방하라!”
소설 첫 문장은 여주인공 박문경이 동래를 떠나 서울로 오는 기차 안에서 듣는 시위 군중의 외침이다. 이와 함께 “빌딩마다 걸린 연합국기와 태극기, 새로 써 붙인 간판과 장식들”(154쪽), “바람벽마다 기다랗게 써다 붙인 광고문과 실천문을 열심히 읽고 섰는 한 물커니씩의 군중”(155쪽)과 같은 구절은 해방 당시의 풍경을 생생하게 전해준다.(인상파 화풍을 독자적으로 소화한 향토적 서정주의의 화가 이인성이 그린 삽화들도 내용 이해를 효과적으로 돕는다.)
소설은 교사 출신 여성 문경과 그의 연인인 의대생 김지원 두 사람을 중심으로 “혼란 가운데서 가장 진실한 그러나 가장 곤란한 길을 걷고 있는 젊은이들의 이야기”(작가의 말)를 들려준다. 해방되기 전 학병 반대 격문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나온 지원은 옥에서 만난 혁명적 노동자 황성묵의 지도 아래 노동운동에 투신하며, 문경 역시 지원을 통해 노동자로 변신하고자 한다. 작가는 이들의 반대편에 박흥식을 모델로 삼은 친일 자본가 이신국의 딸 경희와 그의 남편 김광호를 등장시킨다.
문경이 지원의 가르침과 도움에 힘입어 의식의 각성으로 나아가고, 지원이 황성묵의 지도를 받는 데서 보다시피 교육의 모티브는 소설에서 핵심적인 구실을 한다. 작가의 의도인즉, 주인공들의 교육이 또한 독자에 대한 교육이 되도록 하려는 것이었을 게다. 원산 지주의 아들인 지원이 소작인들이 아버지에게 저지른 행패를 전해 듣고 고민하다가 결국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 조선인민공화국에 반대하는 남동생 무경을 상대로 논쟁을 벌이는 문경의 모습 등에서 작가의 그런 의도는 잘 드러난다.
“이신국이가 일본 놈과 야합해서 전쟁을 돕는 군수산업으로 돈을 모으며 같은 동포의 고혈을 착취헐 때에 이분들(=박헌영과 이재유 등 공산주의자들)은 감옥에서 죽었고 유치장에서 고문과 싸웠고 벽돌공장에 숨어서 일본 놈과 끝까지 싸우는 운동을 지도해 왔세요. (…) 그자들이 공산당을 반대허는 건 친일파이기 때문입니다.”(286~7쪽) 문경이 어머니에게 하는 이 말은 작가가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라 보아 틀림이 없을 것이다. 〈1945년 8·15〉의 말미는 노동자로 전신하면서 문경이 쓴 일기들이다. “내가 노동자계급 여직공의 생활과 의식 정도, 그런 것에 대해서 아무런 준비도 없이 소시민적 근성을 그대로 가지고 그들 가운데 나선 것이 잘못이었다. 아, 어떻게 이 어려운 난관을 돌파할 것인가.”(331쪽) 기득권을 버리고 혁명에 투신하려는 문경의 일기는 역사의 격랑 속에서 새로운 사회를 꿈꾸다가 좌초한 김남천의 고뇌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최재봉 기자
“이신국이가 일본 놈과 야합해서 전쟁을 돕는 군수산업으로 돈을 모으며 같은 동포의 고혈을 착취헐 때에 이분들(=박헌영과 이재유 등 공산주의자들)은 감옥에서 죽었고 유치장에서 고문과 싸웠고 벽돌공장에 숨어서 일본 놈과 끝까지 싸우는 운동을 지도해 왔세요. (…) 그자들이 공산당을 반대허는 건 친일파이기 때문입니다.”(286~7쪽) 문경이 어머니에게 하는 이 말은 작가가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라 보아 틀림이 없을 것이다. 〈1945년 8·15〉의 말미는 노동자로 전신하면서 문경이 쓴 일기들이다. “내가 노동자계급 여직공의 생활과 의식 정도, 그런 것에 대해서 아무런 준비도 없이 소시민적 근성을 그대로 가지고 그들 가운데 나선 것이 잘못이었다. 아, 어떻게 이 어려운 난관을 돌파할 것인가.”(331쪽) 기득권을 버리고 혁명에 투신하려는 문경의 일기는 역사의 격랑 속에서 새로운 사회를 꿈꾸다가 좌초한 김남천의 고뇌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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