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리의 트렁크
굶어죽는 아이·가출소녀에 착취당하는 노인
신문 사회면에서 본듯한 끔찍한 사건들 그려
‘패배를 아름다움으로’ 역설적 희망 찾기
신문 사회면에서 본듯한 끔찍한 사건들 그려
‘패배를 아름다움으로’ 역설적 희망 찾기
<조대리의 트렁크>
백가흠 지음/창비·9800원 백가흠(33)씨의 두 번째 소설집 〈조대리의 트렁크〉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닫힌 공간에서 신음하는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표제작의 자동차 트렁크를 비롯해서 허름한 모텔의 옷장과 철거 예정지의 반지하방이나 한여름 열기 속의 옥탑방 등이 소설집의 배경을 이룬다. 공간적으로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인물들은 갇혀 있다. 집착과 소유욕을 사랑이라 착각하는 남자의 포로 신세인 두 여자(〈굿바이 투 로맨스〉), 군대에서 당한 사고로 불구가 된 뒤 섹스 인형을 사랑하며 인터넷 포르노 소설을 쓰는 남자(〈루시의 연인〉), 가출한 소녀를 손녀처럼 돌보면서 그 아이에게 착취당할 따름인 노인(〈매일 기다려〉) 등이 그러하다. 연작 분위기를 풍기는 제목의 두 단편 〈웰컴, 베이비!〉와 〈웰컴, 마미!〉에서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은 닫힌 공간에서 무력하게 고통받는 존재들의 대표이자 상징처럼 보인다. 〈… 베이비!〉의 아이는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부모 아래에서 눈과 귀가 없는 상태로 태어나 버려지고, 십대 미혼모가 낳은 〈… 마미!〉의 아이는 반지하방에서 먹을것을 놓고 애완견과 다투다가 패배해 굶어죽는다. 〈… 마미!〉의 굶어죽는 아이의 아비가, 수태 능력이 없는 여자의 ‘주문’에 따라 어린아이를 구하고자 그 아이의 엄마를 죽이는 장면에서 세상은 여지없이 지옥의 얼굴을 내보인다. 백가흠 소설의 세목들은 신문 사회면과 방송 뉴스에서 접하게 되는 끔찍한 사건들을 연상시킨다. 그런 사건들은 보는 이의 양심과 윤리를 자극한다. 그러나 그것은 보도를 접하는 순간뿐, 우리는 금세 사건과 그 피해자들을 잊고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지상의 집들은 지하의 집에 아무 관심이 없었다”(〈웰컴, 마미!〉)는 문장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저 유명한 구절(“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의 메아리처럼 들린다. 그러나 세상에는 무관심보다 더 나쁜 것도 존재한다. 이번에는 수전 손택(〈타인의 고통〉)에 기대어 말해 보자면,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고 착취하는 일이 그것이다. “집집마다 밝히는 백열등, 형광등, 가로등 불빛은 아름다운 야경을 자아내 건너편 아파트단지는 주위의 다른 곳보다도 월등히 시세가 높았다.”(98쪽)
〈매일 기다려〉에 나오는 인용 대목은 주인공 노인이 기거하는 철거 예정 빈민촌이 건너편 아파트 단지 주민들의 근사한 야경의 대상으로서 소비되며, 나아가 집값 상승의 근거로 착취되는 양상을 지적한다. 이런 식의 소비와 착취에 비하면 가출 소녀 패거리가 노인을 괴롭히고 이용하는 것은 오히려 약과라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백가흠 소설의 세계에서 출구란 없는 것일까.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받고 모텔 방에 남겨진 아이에게 제 밋밋한 젖을 물리는 동성애자 미스터 홍(〈웰컴, 베이비!〉), 자살한 고교 동창의 노모를 기꺼이 떠안는 노총각 대리기사(〈조대리의 트렁크〉), 그리고 애써 모은 돈을 소녀 일당에게 빼앗기고서도 소녀와 세상에 대한 낙관을 놓지 않는 노인(〈매일 기다려〉)은 미약하나마 희망의 싹을 보여준다. 그 희망은, 여자 유도 대표 선발전에 나갔다가 패하는 순간을 두고 “난생처음 가장 아름답게 허공을 날고 있다. 착지를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이므로 그 아름다움은 더욱 빛이 난다”(〈사랑의 후방낙법〉)고 표현하는 데에서 보듯, 패배를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역설적 희망이라 할 만하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백가흠 지음/창비·9800원 백가흠(33)씨의 두 번째 소설집 〈조대리의 트렁크〉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닫힌 공간에서 신음하는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표제작의 자동차 트렁크를 비롯해서 허름한 모텔의 옷장과 철거 예정지의 반지하방이나 한여름 열기 속의 옥탑방 등이 소설집의 배경을 이룬다. 공간적으로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인물들은 갇혀 있다. 집착과 소유욕을 사랑이라 착각하는 남자의 포로 신세인 두 여자(〈굿바이 투 로맨스〉), 군대에서 당한 사고로 불구가 된 뒤 섹스 인형을 사랑하며 인터넷 포르노 소설을 쓰는 남자(〈루시의 연인〉), 가출한 소녀를 손녀처럼 돌보면서 그 아이에게 착취당할 따름인 노인(〈매일 기다려〉) 등이 그러하다. 연작 분위기를 풍기는 제목의 두 단편 〈웰컴, 베이비!〉와 〈웰컴, 마미!〉에서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은 닫힌 공간에서 무력하게 고통받는 존재들의 대표이자 상징처럼 보인다. 〈… 베이비!〉의 아이는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부모 아래에서 눈과 귀가 없는 상태로 태어나 버려지고, 십대 미혼모가 낳은 〈… 마미!〉의 아이는 반지하방에서 먹을것을 놓고 애완견과 다투다가 패배해 굶어죽는다. 〈… 마미!〉의 굶어죽는 아이의 아비가, 수태 능력이 없는 여자의 ‘주문’에 따라 어린아이를 구하고자 그 아이의 엄마를 죽이는 장면에서 세상은 여지없이 지옥의 얼굴을 내보인다. 백가흠 소설의 세목들은 신문 사회면과 방송 뉴스에서 접하게 되는 끔찍한 사건들을 연상시킨다. 그런 사건들은 보는 이의 양심과 윤리를 자극한다. 그러나 그것은 보도를 접하는 순간뿐, 우리는 금세 사건과 그 피해자들을 잊고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지상의 집들은 지하의 집에 아무 관심이 없었다”(〈웰컴, 마미!〉)는 문장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저 유명한 구절(“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의 메아리처럼 들린다. 그러나 세상에는 무관심보다 더 나쁜 것도 존재한다. 이번에는 수전 손택(〈타인의 고통〉)에 기대어 말해 보자면,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고 착취하는 일이 그것이다. “집집마다 밝히는 백열등, 형광등, 가로등 불빛은 아름다운 야경을 자아내 건너편 아파트단지는 주위의 다른 곳보다도 월등히 시세가 높았다.”(98쪽)
〈조대리의 트렁크〉의 백가흠씨. 사진 김경호 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