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구 교수
평화·통일연구소와 ‘…한미관계 새판짜기 2’ 낸 강정구 교수
홍근수 목사 고희기념문집
홍근수 목사 고희기념문집
“해방 이후 60여년 동안 외국군대가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용납하기 어렵다. 고구려를 멸망시킨 당의 안동도호부도 9년 반만에 요동으로 밀려났다. 그 뒤 원·명·청 대의 침략자들 군대도 10여년을 넘기지 않았다. 일제 때도 1905년부터 쳐도 40년이다. 그때는 식민지였고 지금은 해방된 나라라는데. 민족자주에 치명타다. 자존심이 허용하지 않는다. 개인의 자존심, 민족의 자존심 모두.”
‘통일전쟁’ 등 한국현대사의 ‘금기사항’들에 대한 정면발언으로 사회적 논란을 부른 강정구(62)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가 자신이 소장으로 있는 평화·통일연구소 안팎의 연구자들과 함께 <전환기 한미관계의 새판짜기 2>(한울)라는 책을 냈다. 이번 책은 통일·평화운동의 선구적 실천가로 ‘통일과 평화를 여는 사람들(평통사)’을 설립하고 상임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홍근수 목사 ‘고희기념문집’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미군에 대한 이승만 대통령의 작전지휘권 이양은 한국쪽이 자발적으로 넘긴 게 아니라 미국의 강압에 의한 것이었다. 이제까지 누구도 그게 비자발적이었다는 사실을 밝힌 적이 없다. 이양일도 1950년 7월8일로, 알려진 것보다 더 빨랐다. 6월29일 현장 파악차 한국에 온 맥아더가 미군 투입의 전제조건으로 작전지휘권 이양을 요구했고 7월8일 대전협정을 통해 넘어갔다.” 이 책 제1장에 수록된 ‘작전통제권 상실과정과 한국군의 탈주권화’(연구소 박기학, 고영대 상임연구위원과 함께 썼다)는 이런 내용을 자세히 담고 있다. 강 교수는 또 군 지휘권은 국가주권에 관한 사항인데도 이양이 “국회동의나 국무회의 의결, 심지어는 외무부와의 논의 등 최소한의 적법한 절차도 밟지 않은 채 위헌적으로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지휘권 이양은 당시 “현 적대상태가 계속되는 동안이라 명기한 한시적 조건부 이양”이었음에도 정전협정 체결 이후에도 반환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2012년으로 예정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도 지금과 같은 기형적 대미종속체제에서는 알맹이를 뺀 기만적 반환에 그칠 공산이 크다고 우려했다.
이번 책 제목에 ‘2’가 붙은 것은 2005년 초에 연구소가 낸 같은 제목의 책(그때는 ‘1’이란 번호를 붙이진 않았다) 후속작업이기 때문이다. 28일 강 교수는 첫 책 낼 때의 생각을 이렇게 더듬었다. “2005년은 해방 60년이자 분단 60년, 외국군 주둔 60년이었다. 도대체 우리에게 해방이란 게 뭐냐. 해방동이인 나는 인생을 되돌아보고 지난 삶을 마감하면서 다시 새로운 삶, 새로운 역사, 통일 자주 역사를 위한 결정적인 전환을 이룩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특히 한-미관계를 바로잡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지난 24일엔 서울 중구 향린교회에서 열려 문정현·문규현 신부와 이석태 전 민변회장, 그리고 각계 인사 1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문집 헌정식이 열렸다. 2004년 9월 출범한 평화·통일연구소는 1994년에 설립된 평통사 부설 연구소다. 강 교수는 평통사를 만들 때부터 관여했고 연구소는 출범 때부터 소장을 하고 있다. “전문학자들이 많지만, 대개 미국 유학을 갔다 온 그들은 거의 모두 미국적 사고에 젖어 있어서 우리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 현장운동가들도 전문가들이나 당국자들 못지 않은 전문지식과 경험적 자료들로 무장한 지적 기반을 갖춰 잘못된 논리를 깨뜨려야 한다.” 연구소를 만든 이유다.
그는 지금 동국대학교에서 ‘직위해제 처분’을 받은 상태. “대학이 학문의 자유에 대한 부당한 개입을 막아주는 보호막이 돼야지…. 게다가 포용력 발휘가 불교학교의 근간 아닌가. 납득하기 어렵다.”
글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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