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스틱 개미지옥
백화점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추적
노동자 옭아매는 자본주의 들춰내
올해 문학수첩작가상 수상작
노동자 옭아매는 자본주의 들춰내
올해 문학수첩작가상 수상작
<판타스틱 개미지옥> 서유미 지음/문학수첩·9000원
백화점 건물에 내걸린 커다란 꽃 장식을 보고 어떤 이는 사진을 찍어대고 어떤 이는 “잘 익어서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종기”를 떠올린다. 계산대 앞에서 노래하듯 ‘무이자 할부’를 주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이 스스로 걸어들어가 철컥 걸려 버리는 ‘달콤한 덫’임을 진작에 알게 된 사람도 있다. 누군가에겐 분명 판타스틱하게 다가올 열흘간의 ‘판타스틱 세일’은 다른 누군가에겐 가장 판타스틱한 강도의 노동이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기간이다.
제5회 문학수첩작가상 수상작인 서유미(32·사진)씨의 〈판타스틱 개미지옥〉은 소비 자본주의의 꽃인 백화점을 냉혹한 식충식물로 그린다.
적어도 백화점 노동자 신분으로 백화점에서 단물을 빨아먹으려다 신물까지 빨린 뒤 맥없이 고꾸라지는 등장인물들에겐 그렇다.
세일 셋째 날, 백화점 화장실에서 주검이 발견된다. 소설은 이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세일 첫째 날부터 셋째 날까지 등장인물 일곱명의 행적을 따라가며 범인을 밝히는 추리소설 형식을 띠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속물적 욕망과 무기력함에 발목 잡혀 백화점 안에 갇혀 있다. 백화점에서 장기 아르바이트를 하는 소영은 처음으로 산 ‘백화점 물건’인 값비싼 립글로스를 바르며 “트고 갈라진 입술이 위로받는 기분”을 느낀다. 직원인 미선은 “어쩐지 이 옷을 입으면 주인공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정작 입을 일 없는 옷을 사들이고, 생필품까지 꼭 백화점에서 사다 쓰는 동료 직원 지영은 “자신은 과로와 피곤에 지쳐 몸살에 걸린 일개 계산원에 불과하지만 자신이 쓰는 물건은 고급”이라는 사실에 위안을 얻는다. 그들은 백화점에서 번 돈을 고스란히 백화점에 상납한다.
백화점이 돌아가는 매커니즘의 진실은 “세계인의 축제인 월드컵의 축구공이 가난한 나라 아이들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것처럼 아름답고 값비싼 물건은 가난한 직원들의 손을 빌려서 팔린다”(109쪽)는 것에 가깝지만, 직원들은 착각에 빠진다.
“사실 백화점이라는 데가 좀 그렇다. 사람이 아니라 물건이 주인공이다. 직원들은 그저 물건을 파는 도구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하루 종일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비싼 물건을 만지고 있다 보니 자신이 그 물건의 주인이라도 되는 줄 안다.”(129쪽)
이들의 덧없는 욕망은 가슴에 스팽글 장식이 달린 카디건을 교차점으로 얽히고, 마침내 살인을 부른다. 백화점의 화려한 장막에 살인 사건은 별다른 동요 없이 가려진다. 어차피 백화점의 주인공은 물건이다.
“백화점 안에서 보내는 시간은 밖에서 보내는 시간과 좀 다르게 흘러간다 … 시간의 경계나 내용 같은 게 전부 희미해지는 기분이다. 그래서 이 안에 있다 보면 자꾸 현실을 망각하게 된다. 기상이변, 내수 시장 위축, 자살, 청년 실업, 이런 것도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 그냥 여기에는 물건이라는 주인공이 있고 그것을 파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139쪽)
소설은 20~30대 여성들의 일과 사랑을 그리는 칙릿의 껍데기를 둘렀지만, 속은 비정규직·저임금 여성 노동자들의 삶과 이들을 옭아매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포착해낸 세태소설에 가깝다.
대학 시절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한 경험이 있다는 작가는 앞으로 “메시지가 있되 쉽게 읽히고 재미있는 작품을 계속 쓰고 싶다”고 말했다.
글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제5회 문학수첩작가상 수상자 서유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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