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중국 황제들에게 ‘천하대권의 길’ 묻다

등록 2007-10-19 21:26수정 2007-10-19 21:36

중국 황제들에게 ‘천하대권의 길’ 묻다
중국 황제들에게 ‘천하대권의 길’ 묻다
〈제왕의 길〉런하오즈 지음·차혜정 옮김/에버리치홀딩스·1만3000원
〈패권의 법칙〉 조유 지음·황보경 옮김/열대림·2만5000원

초등학교 때 고전읽기대회라는 게 있었다. 특이한 건 역사 고전 중 <삼국시대>는 3편으로 나뉘어 있었다. 신라편을 읽은 아이는 관창의 용맹스런 기개에 탄복한 반면 백제편을 읽은 아이는 계백의 장렬한 전사에 눈물을 적셨다. 그런데 두 편을 다 읽은 아이는 아노미 상태에 빠진 채 대회에 나가 셋 중 유일하게 상을 받지 못했다. 승자의 기록이란 말이 시사하듯 ‘있었던 그대로의 역사’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특히 영웅사관으로 서술된 전기류는 상대적 오류의 위험이 클 수밖에 없다.

5천년 중국 역사의 고비마다 물길을 바꿔놓은 제왕들의 패권을 다룬 두 권의 책이 동시에 나왔다. <제왕의 길>은 진시황에서 누르하치까지 16명의 제왕적 리더십을 다뤘다. <패권의 법칙>도 11명의 창업형 황제들의 패권적 리더십을 담았다. 다행인 것은 시대를 읽어낸 제왕들의 안목뿐만 아니라 천하를 얻기 위해 동원한 권모술수와 치부를 함께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편 가르기나 영웅화의 함정에 빠질 수 있는 위인전기와 차별화한 셈이다.

진시황·누르하치 등 16명에게 치세 비결
풍운의 제왕 11명에겐 창업형 리더십 읽어
미화없이 권모술수까지 냉정하게 파헤쳐

두 책에는 7명의 황제가 겹치기 출연하지만 그 서술방식은 사뭇 다르다. 제목처럼 <제왕의 길>은 왕조 순서에 따라 제왕별로 장을 나누어 흐름을 통시적으로 전개하면서 성공의 교훈을 각각 귀납적으로 도출했다. 반면 <패권의 법칙>은 전략의 깃발을 먼저 들고 여기에 패왕들을 공시적으로 이합집산시켜 대비하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제왕>은 금나라를 세운 아골타에게서 선동의 힘을, 청 태조 누르하치에게서 복수의 힘을 읽는다. <패권>은 ‘시대와 형세’ 편에서 대의명분이 설 때까지 기다리는 당 고조 이연과,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원 세조 쿠빌라이를 함께 엮어 놓았다.


항우와 전쟁터에서 일대일로 대결했더라면 목이 달아나고 말았을 유방의 승인은 패륜적 실용주의에 있다. 항우의 대군에 쫓기던 중 마차가 무거워서 빨리 못 달리자 유방은 타고 있던 자식들을 밖으로 밀어버렸다. 놀란 부하들이 다시 태웠으나 어김없이 밀어버리기를 몇 차례나 반복했다. 또 항우가 유방의 아버지를 사로잡고 “삶아 죽이겠다”고 협박하자 유방은 얼굴빛 하나 안 변한 채 “국 한그릇 나눠 주시구려”라고 답했다. 목표가 확실하면 모든 것을 버리는 그만의 생존법칙이다. 유방은 개국 황제로 등극했고 항우는 오강 기슭에서 자살했다.


〈제왕의 길〉과 〈패권의 법칙〉
〈제왕의 길〉과 〈패권의 법칙〉

나관중에 의해 간웅의 이미지로 낙인찍힌 조조는 생전에 정식으로 제위에 오르지 않았지만 진정한 개국 황제로 불렸다. 조조는 수확철에 군사들이 보리밭을 밟고 가면 예외없이 목을 벨 것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보리밭에서 갑자기 새가 튀어나오자 조조가 탄 말이 놀라 보리밭으로 뛰어들었다. 조조는 당황했지만 즉각 관리에게 자신이 법을 어긴 사실을 알렸다. 난감한 관리가 “어떻게 군령을 승상께 적용하겠습니까?” 라고 반문하자 조조는 “내가 내린 명령을 내가 먼저 어긴다면 어떻게 사람들이 승복하겠는가?”라면서 자진할 듯한 몸짓을 취했다. 이때 곽가라는 사람이 속내를 눈치채고 “법은 존귀한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라고 무마했다. 한참 생각에 잠겼던 조조가 엄숙한 표정으로 “머리카락을 잘라 참수를 대신하겠다”며 칼로 자른 머리카락을 군영에 돌려 군사들이 보게 했다. 조조는 몸을 바르게 하지 않으면 명령이 통하지 않고, 명령을 따르지 않는 군사들은 변란을 일으킨다고 믿었다.

거지에서 천자의 지위까지 오른 명나라 태조 주원장은 대업을 이룩한 자부심과 비천한 신분에 대한 자괴감이 교차하면서 개국 공신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공신 중의 으뜸인 서달도 황제의 의심에 심리적 고통을 느끼다가 등에 혹이 생겨 드러누웠다. 황제가 음식을 보내오자 감격한 서달이 그릇을 열어보니 거위고기였다. 의생으로부터 먹으면 안 된다는 주의를 들었지만 성은을 거역할 수 없어 고기를 삼켰다. 며칠 뒤 서달은 영원히 눈을 감았다. 태조는 통곡하며 문상을 갔지만 서달의 집에 도착하자 그의 병을 치료했던 의생들을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서달은 이런 일을 예측하고 죽기 전에 의생들을 도망시켰다.

출신은 다르지만 제왕들은 뛰어난 지략으로 대세를 정확히 읽어냈으며 인재를 알아보고 적재적소에 기용한 공통점이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초심을 잃어 공신을 의심하고 민심을 능멸하다가 비참한 말로를 맞는 사례가 많았다. 수없이 명멸해간 군웅 속에서 영웅과 간웅을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제왕의 길’에 피의 비단을 깔아준 ‘패권의 법칙’을 통해 영웅이 시대를 만드는지, 난세가 영웅을 낳는지 되새겨 볼 일이다. 한광덕 기자 kdha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